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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Apr 25. 2023

간헐적 단식을 하루 만에 실패한 아주 합리적인 이유

금 토 일 월, 저녁을 먹지 않기로 다짐했다. 저녁을 먹지 않기로 결심하고 3일 만에 먹어버린 작심삼일에 이은, 작심사일 전략이었다. 작심 사일은커녕 작심도 하지 못했다. 단 하루 만에 실패했다.


큰 아이는 공립 중학교 대신 대안학교를 선택했다. 난 대안학교를 공부 안 하는 학교 아이에게 소개했고, 아이는 그 떡밥을 물었다. 많은 대화 끝에 아이는 월 화 수 목은 생활관에 머물러야 하며, 신청을 해야만 금토일에 외출이나 외박을 할 수 있는 학교에 입학했다.

생활관에 머무는 건 정말 힘든 일이다. 아마도 군 훈련소에 들어간 느낌 아닐까? 입소한 첫날 아침, 눈을 떴는데 집이 아닌 거다. 이때 받은 충격이 아직도 생생하다.


개인적인 공간도 없고, 생전 처음 빨래에 청소까지 해야 한다. 일주일에 머리를 한 번 감을까 말까 하고, 늦게 자고 학교 가기 20분 전에 일어나 아침도 먹는 둥 마는 둥 급하게 학교로 터덜터덜 걸어가던 녀석이 주변 시선 때문에 매일 샤워를 하고 아침 7시에 기상 송이 울리고 아침에 맡은 구역 청소를 해야 하는 상황에 던져진 거다.


난 운전 지옥에 던져졌다. 서울에서 학교까지 왕복 7시간. 아이는 매주 집에 오고 싶어 했고, 난 매주 금요일 제천에서 아이를 데려오고, 일요일에 아이를 데려다주어야 했다. 총 14시간 운전을 해야 했다.


금요일에 반차를 내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일주일 만에 아이를 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그다음 주도 반차를 내고 아이를 데리러 갔다. 눈물이 핑 돌지는 않더라. 백일 휴가 때 도착 시간을 알리지도 않았는데 지하철역으로 마중 나와 눈물을 흘리던 엄마와 상병 휴가 때 내 휴가를 잊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버린 엄마가 교차되며 떠올랐다. 그다음 주는 혼자 서울에 올 수는 없는 걸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교 앞으로 지나가는 시내버스는 딱 한 대. 배차 간격은 4시간, 면 중심지로 나가는 막차는 4시 15분이다. 면으로 나가면 터미널로 가는 시외버스가 5시에 있다.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한 시간. 동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2시간이면 동서울 터미널에 도착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오면 귀가 성공!


아이가 이걸 할 수 있을까? 지하철도 몇 번 타보지 못했는데 이 루트를 거쳐 혼자 집으로 올 수 있는 걸까?


“아빠, 이번 주는 그냥 생활관에 있을게”

야호. 다행이다. 이번 주는 운전 지옥에서 잠시 벗어나는구나.


“아빠, 이번 주에 그냥 나가야겠어”

월요일까지는 생활관에 그냥 있겠다고 하던 아이가 화요일엔 집에 와야겠단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어쨌든, 아이가 나오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금요일에 미팅을 잡아버렸다. 반차를 낼 수 없는 상황. 아이에게 설명했더니 이렇게 말하더라.


“아빠, 나 버스 타고 한 번 가볼게!”

시내버스-시외버스-고속버스-지하철로 이어지는 대중교통의 향연에 아이는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덕분에 난 14시간 운전 중 7시간을 대중교통에 외주 줄 수 있었고.


"그래! 충분히 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했지만 불안했다. 학교가 끝난 순간부터 동서울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전화를 하고 카톡을 쉴 새 없이 보냈다. 동서울 터미널 하차장에서 고속버스에서 내리를 아이를 보는 순간 코 끝이 찡했다. 아이를 꼭 끌어안고 대견하다, 멋지다, 대단하다를 반복해서 외쳤다.


작심 사일의 시작인 금요일이 바로 이런 날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이는 우동과 핫바 그리고 삼각김밥이 먹고 싶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우동 집으로 들어갔고 난 무언가에 홀린 듯 함께 우동을 먹었다. 밤 9시였다.


뭐... 그랬다는 거다. 내 작심 사일은 첫날부터 무너졌고, 어쩔 수 없는, 아주 합리적이고도 개연성 있는 이유가 있었다는 거다.

무너진 결심은 주말을 덮쳤고, 그렇게 월요일이 되었다.

작심 오일의 시작을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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