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성실한 베짱이 Apr 27. 2019

산책과 화장실

산책을 하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난 매일 아침 산책을 한다. 


4시 30분 정도에 일어나서 이빨을 닦고, 물을 마시고, 잠시 명상을 한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20분 정도 산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다. 


산책은 제일 가까운 공원으로 간다. 얕은 언덕, 풀과 꽃 그리고 나무들이 있는 코스다. 매번 같은 코스는 지겨우니 2주에 한번 코스를 바꾸어 준다.


오늘은 산책을 하다 갈림길을 만났다. 매일 만났을 갈림길인데, 오늘은 뭔가 다르게 느껴졌다. 이 길을 따라 가면 내가 몰랐던 비밀의 공간이 나올 듯했다.


'여기에 이런 길이 있었나? 공원에 내가 모르는 새로운 곳이 있을 것 같네...'

라는 느낌으로 그 길로 들어섰다.

왼쪽은 '새로운 길'이라 생각했던 길. 오른쪽은 알고보니 갔던 길. 즉, 같은 길.


그 길의 끝엔 내가 2주 전에 갔던 코스가 나왔다. 2주 전에 항상 거꾸로 지나갔던 길이었다. 단지 2주 전 출구라 여겼던 곳을 입구라 생각하고 봤을 뿐인데 새로움을 느꼈다. 새로운 곳이 있을 것 같다는 조금의 설렘마저 느꼈다.



핵심은 언제나 간단하다. 


핵심 그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단지 무언가를 바라보는 관점, 어떤 행동에 대해 내가 인식하는 방법이나 정도, 어떤 사물이나 행동에 부여하는 의미에 따라 그 핵심이 나에게 다른 사물, 행동으로 다가온다.


'그것'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 같은 형태로 서있다. 

내가 '그것'을 바라보는 순간

이름을 붙여 주는 순간

무엇이라 인식하는 순간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순간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나에게 그리고 너에게 다른 것이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인생이 다채롭고 재미있는 것 아닐까.



난 화장실 청소를 한다.


내가 제일 하기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화장실 청소다. 그러나 꾹 참고 웬만하면 매주 하려고 노력한다. 몇 주 묵혀 두면 너무 힘들기도 하고 화장실이 더러워져 삶의 질이 떨어진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하기가 싫어진다. 그렇게 1주일 밀린 게 몇 달이 가기도 한다.


하기가 싫으니 시간을 자꾸 미룬다. 일주일 내내 미루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서야 '아... 더 이상 미루면 안 돼!'라고 생각하며 화장실로 간다.

'도대체 왜 나만 하는 거야!'

이런 생각으로 머리를 가득 채우고, 명치에 꿉꿉한 통증을 느끼며 청소를 한다.



산책 후 화장실이 달라졌다.


오늘 산책을 마치고 난 욕조에 물을 받았다.

물이 채워지고 좋아하는 반신욕을 했다.

내 몸도 뜨거워지고 욕조도 뜨거워졌다.

내 몸과 욕조의 때가 함께 부드러워졌다.


반신욕을 마치고 난 욕조를 닦기 시작했다.


일주일간 묻었던 가족들의


피로, 힘듦

외부에서 받은 부정적인 말

부정적인 시선

그로 인한 부정적인 감정


이런 것들이 욕조에 고스란히 묻어 있었다.


이 욕조에 묻어 있는 가족의 노폐물들을 내 몸의 피로와 함께 불리고, 닦아 내기 시작했다. 세면대를 닦고 변기를 닦고 바닥을 닦았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닦으며 날 바라봤다.



그곳엔 가족들의
피로를 닦아내고,
깨끗하고 맑은 에너지로
화장실을 가득 채운
영웅이 서 있었다.



가족들의 피로를 씻어내고 맑고 깨끗한 에너지로 가득찬 화장실.



난 이제 화장실 청소가 좋아졌다.

매주 토요일 아침,

하지 않으면 하루 종일

찝찝한 일이 되어 버릴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