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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Jul 08. 2019

9화. 팀장님, 왜 이리 잡무만 던져 주십니까?

평범한 직업은 없다. 평범한 방식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평범해질 뿐이다.

2018년 9월 육아휴직을 끝내고 복직했다. 회사원이라면 '참 어중간할 때 복직했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일을 안 주고 버티기도, 주요 업무를 주기 애매하다.


내가 이전에 맡았던 업무를 그대로 주면 되지 않을까? 쉽지 않다. 이미 10개월 동안 해당 업무를 다른 사람이 하고 있었다. 무언가 추진 중이었다면 업적도 빼앗아 가는 느낌이 들 수도 있다. 그럼 남은 건 누가 해도 다 할 수 있는 흔히 말하는 잡무만 남게 된다.


내가 받은 일은 이렇다.


1. 팀 간식 구매

2. 전무님 법인카드 사용 건 청산

3. 각종 경비 집행

4. 영업조직 비용 관련 모든 업무

5. 기타 팀장님이 시키는 일


올해로 이 회사에 들어온 지 11년이 되었다. 난 사원이 하는 일을 다 받아 버렸다. 이 업무는 루틴 하게 돌아간다. 귀찮다. 업무 역량이 강화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돈과 관련되어 리스크는 크다.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일을 맡았다. 짜증 났다.


그러다 퇴사를 목표로 회사를 다니기 시작했다. 상사의 인정이라는 기존의 목표가 사라졌다. 일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을 하는 방식이 달라졌다. 남들이 하찮게 생각하던 일에서 할 일이 보이기 시작했다. 개선점이 보였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가이드를 만들다.

매뉴얼이 없었다. 어떤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전화가 왔다. 이건 해도 되냐, 서류는 뭘 첨부해야 하냐, 저건 사도 되냐, 품를 해야 하냐... 수없이 많은 질문들을 했다.


그나마 물어보면 다행이었다. 안 물어보고 처리하는 것들을 모니터링해보니, 다 제각각이었다. 기준은 그때그때 이메일로 내려보내 찾기도 힘들었다.


난 히스토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구전되어 전설로만 내려오던 기준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2006년에 보냈던 이메일까지 나왔다. 타 부서로 이동한 선배, 타사로 이직한 동료에게 전화를 해서 히스토리를 체크했다. 10년 치 문서를 뒤졌다. 정약용이 목민심서를 만들 듯 모든 것을 총망라했다. 구나 볼 수 있는 가이드를 만들었고, 이제 이 가이드를 보면 관련 업무의 80% 이상이 해결된다.



업무를 확장하다.

관련해서 정기 교육을 실시했다. 내가 주관하는 교육을 분기에 한 번씩 하게 되었다. 새로운 마케팅 툴을 만들고, 없던 제도를 만들어 영업을 활성화했다. 팀 간식으로 과일을 샀다. 라즈베리, 페퍼민트, 레몬밤, 레몬 그라스 티를 샀다. 몽쉘통통과 버터와플 대신이었다.


팀장님은 날 경비 전문가로 부른다. 감사가 나왔을 때도 결정하기 힘든 일이 있을 때도  찾는다.


예전에 이 일은 매달 반복되는 단순하고 하기 싫은 일이었다.


그러나 이젠 아니다. 가이드를 분기마다 업데이트하고 새로운 툴을 기획하고 만들어내고 전체 교육을 주관하는 업무가 되었다. 애피타이저 용이었던 새우가 멋진 요리법을 만나 메인디쉬가 되었다.


구본형 선생은 책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에서 '평범한 직업은 없다. 평범한 방식으로 수행되기 때문에 평범해질 뿐이다.'라고 말한다.


일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일은 없다. 평범하게 일을 처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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