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4시. 알람이 울린다. 베짱이가 이 풀잎에서 저 풀잎으로 점프하듯 단번에 일어난다. 알람을 끄는데 내게 주어진 시간은 단 3초. 그 이상 시간을 끌면 둘째가 깰 수 있다. 둘째가 깨면 아내의 짜증이 함께 깨어나므로 조심해야 한다.
일찍 일어난 만큼, 아침을 여유롭게 사용하고 출근한다. 레몬그라스를 한 잔 준비하고 하루 시간을 배분한다. 오늘 해야 할 업무 리스트를 작성한다.
10시 30분까지 루틴 한 잡무를 처리한다. 그리고 미팅을 가는 척 책을 다이어리에 숨겨 일어선다. 이 시간에 읽는 책이 제일 집중이 잘 되는 것 같다.
11시 30분에 미팅에서 돌아온 척 자리에 앉는다. 부장, 팀장에게 몇 가지 보고를 한다. 난 11시 30분 보고를 선호한다. 곧 점심시간이라 강제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콤팩트한 보고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2시에 보고를 하면 팀장의 업무관과 우리 사업본부의 나아갈 길에 대해 1시간가량 들어야 하는 불상사가 생길 수 있다.
오늘 점심시간에는 아침에 완성하지 못한 브런치 글을 쓰기로 했다. 카페에 앉아 커피 향을 음미하며 1시간가량 글을 쓴다. 사무실로 들어와 2시까지는 블로그를 관리하거나, 새로운 매거진 및 글감을 기획한다.
2시부터 5시는 주요 업무 시간이다. 이 시간엔 웬만하면 전화도 받지 않는다. 오늘은 수수료 개정안 보고 자료 초안을 만들어 보고 하기로 했다.
4시 즈음 동기가 신호를 보낸다. 노가리를 까러 나가자는 신호다. 예전 같으면 얼씨구나 하고 일어섰겠지만 주요 업무를 마무리해야 할 시간이 1시간밖에 남지 않았기에 정중히 거절한다. 5시에 나가기로 한다.
집중해서 업무를 하니 30분 먼저 보고서 초안이 완성되었다. 동기와 휴식을 취하러 나간다. 30분 정도 주변을 산책하고 돌아온다.
5시부터는 이메일을 정리한다. 답장이 필요한 메일에는 답장을 하고, 추후 처리가 필요한 사항은 다이어리에 기재해서 내일 업무 시간에 배분하도록 한다.
벌써 6시다.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어서 가서 가족들과 저녁을 먹어야겠다. 9월에 첫째와 마라톤에 나가기로 했다. 식사 후 마라톤 훈련을 함께 해야 한다.
오늘 하루도 행복하게 보냈다. 아내와 아이가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 궁금하다. 어서 집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일하는 시간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일 하는 양은 똑같다. 아니 더 많아졌다. 그리고 퀄리티도 높아졌다.
ㅣ왜 퀄리티가 높아졌나.
목표를 설정하고, 중요한 일을 구분할 수 있게 되면서 나만의 다섯 가지 기준을 세웠다.
1. '중요한 일'을 '먼저'한다.
2. '주요 업무 시간'을 '통째로 확보'한다.
3. '잡무'는 매월 첫째 주와 마지막 주로 몰고, 아침 1시간, 퇴근 전 1시간을 이용해 처리한다.
4. '이메일 정리 및 답장'은 퇴근 전 1시간을 이용한다.
5. 오전 1시간, 오후 1시간씩 자기 계발 시간을 확보한다.
목표가 없을 때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했었다. 일을 깜빡하는 경우가 많아 항상 급한 일이 생긴다. 갑자기 팀장이 일을 시키면 그 일을 한다. 쉬지 않고 바쁘게 일을 하지만 급한 잡무만 처리하고 퇴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목표가 확고히 정해지면, 무엇이 중요한 일인지를 명확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 그러면 주요 업무에 시간을 통째로 배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업무 집중도가 높아지고 당연히 효율과 퀄리티도 높아진다.
주요 업무가 명확해졌다는 것은 잡무도 명확해졌다는 뜻이다. 잡무는 몰아서 하면 몰아서 할수록 효율이 높아진다. 내 목표를 이루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루틴 한 일상 업무들은 다른 생각을 할 필요가 없다. 그저 효율적으로 최대한 빠르고, 실수 없이 처리하면 된다.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든다. 그러면 내 자기 계발 시간과 휴식 시간이 늘어난다. 자기 계발 시간도 중요 업무의 하나로 플래너에 기재하면, 더욱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된다. 그동안 회사 생활을 하며 전혀 느낄 수 없었던 보람이란 것도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한다. 휴식도 동료들과 긴 시간 노가리나 까는 수동적인 시간이 아닌 산책, 잠과 같은 적극적인 휴식 시간으로 바뀐다.
ㅣ그럼 뭐가 중요한 일인데?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구분하는 기준을 세 가지로 정했다.
1. 마케팅 능력을 키워 주는 일
2. 글 쓰는 능력을 키워 주는 일
3. 기획하고 개선하는 일
퇴사 후 가장 필요한 능력은 바로 마케팅 능력이다.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무언가를 매력적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능력'정도로 정의하고 싶다.
친한 동기와 점심을 먹다 퇴사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동기: 퇴사를 하고 싶긴 한데, 퇴사해서 뭘 하냐...
나: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동기: 그러니까 퇴사 못 하는 거야...
나: 아니 내가 할 건 알고 있는데, 네가 할 건 내가 모른다는 이야기야.
동기: 넌 뭘 할 건데?
나: 나? 책을 써도 되고, 강의를 해도 되지 않을까?
동기: 뭘로? 콘텐츠가 없잖아. 콘텐츠.
나: 콘텐츠는 '음... 뭐 좋은 거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하나씩 쌓아 나가는 거야' 아무것도 하지 않고 좋은 콘텐츠 하나 어디서 떨어지는 거 없나 하고 기다리면 그냥 이 회사 계속 이 대로 다니는 거지 뭐...
그렇다. 콘텐츠는 하나 씩, 매일매일 쌓는 거다. 중요한 건 뭐라도 내가 스스로 생산을 해 내는 거다.
글 쓰기는 퇴사에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어떠한 분야든 글쓰기 능력은 반드시 도움이 된다. 마케팅 능력도 그렇고 콘텐츠를 생산해 내는 것도 그렇다. 글쓰기 능력이 향상된다면 그 영향력은 반드시 극대화된다.
기획하고 개선하는 일도 퇴사에 도움이 되는 중요한 일이다. 퇴사를 하면 나 스스로 콘텐츠를 개발하고 생산하는 일이 매우 중요해진다. 회사를 다니며 이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커뮤니케이션 자료를 만든다거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사용 기준을 하나의 기준으로 정리해서 공유한다거나, 회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든다거나, 어떻게 수수료를 인하하였을 때 마케팅 효과는 극대화되면서 손실은 최소화할 수 있을지를 분석하여 보고한다거나, 기존과는 다른 마케팅 툴을 개발한다거나 하는 일들은 내 기준 중 1개 이상에 부합하는 주요 업무 들이다.
난 이렇게 퇴사를 향해 한 발자국 씩 다가가고 있다. 매일매일 무언가를 생산해 내며, 콘텐츠를 쌓아 가고 있다. 회사를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도움이 되는 회사생활을 하기 위해 하나씩 바꾸어 나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