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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Oct 13. 2019

불행한 청년은 휘게를 몰라서 불행했나.

한민 ㅣ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 ㅣ 위즈덤하우스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 청년은 항상 힘들었습니다. 자신을 불행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을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죠. 행복해 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쓸데없는 짓이었습니다.

청년은 어렸을 때를 생각해 봤습니다. 부모님은 자신이 하기 싫어하는 것만 하라고 하네요. 씻기 싫은데 씻으라 하고, 공부하기 싫은데 공부를 하라고 합니다. 텔레비전을 보고 싶고 오락을 하고 싶은데 그만하라는 말만 하네요.

뭐... 커서 보니 부모님이 하지 말라고 했던 것, 하라고 했던 것들이 왜 중요한지 이해는 갑니다. 그러나 청년은 당시엔 힘들었습니다. 즐겁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기분은 온 데 간데없고 항상 강요만 당한 느낌이네요.


청년은 자신의 기분을 말하면 안 됩니다. 아빠가 그렇게 하라고 했거든요. 참아야 합니다. 부정적인 감정이나 느낌은 나쁜 거니까요. 선생님과 부모님은 항상 맞는 이야기 당연한 이야기 옳은 이야기만 합니다. 그들은 그렇게 살고 있을 궁금하지만 귀찮으니 확인해보지는 않기로 합니다.

청년은 술자리를 항상 주도하고 싶었습니다. 청년이 던지는 한 마디 한 마디에 사람들이 빵빵 터졌으면 했죠.  그러나 술자리는 청년에게 냉담했습니다. 사람들 에게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며 너무 차다며 울먹이는 청년입니다.

청년은 인정받고 싶었지만 잘 되질 않는군요. 청년의 자존감은 떨어졌죠. 자존심만 남은 듯했습니다. 사람들은 자존심은 나쁜 거고 자존감은 좋은 거라고들 합니다. 자존심만 남은 청년은 나쁜 사람이 되어 버렸네요. 자존심을 버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야 행복해질 텐데요. 그리고 자존감을 높여야겠죠.

청년은 이제 취업을 해야 합니다. 취업을 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뭐... 사실 죽을 듯이 준비했던 건 아닌 듯 보입니다. 공부도, 취업준비도 하기 싫었고, 오락이나 하고, 술이나 마시며 놀고 싶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러다 취업을 못하면 얼마나 쪽팔릴지 상상도 하기 싫었기 때문에 나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3포다, 5포다, N포다 말이 많지만 청년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불굴의 의지로 버틴 건 아니었지만요. 취업은 노력의 영역이 아니었습니다. 운의 영역이었죠. 특별한 스펙이나 네트워크가 있지 않은 이상 운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장이었습니다. 다행히 청년은 운이 좋았습니다.

청년은 딱히 가고 싶었던 회사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회사에 들어가는 것 말고 마땅한 대안은 없었습니다. 생각도 하지 않았죠. 이렇든 저렇든,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취업에 성공했을 때 청년은 행복했습니다. 합격했다는 소식을 엄마에게 전했을 때의 행복감은 말로 할 수 없을 정도였죠. 첫 월급을 받아서 친구들과 후배들에게 술을 한 잔씩 샀을 때의 으쓱함도 행복을 배가 시켰죠. 그러나 한 달 후 청년은 다시 불행해졌습니다.

열정을 가지고 내 한 몸 불살라 회사를 위해 일하려 했지만 회사는 불합리한 것들이 너무 많았죠. 왜 해야 하는지 모를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책임은 커졌습니다. 나에게 요구하는 사항들이 하나둘씩 늘어났습니다. 청년은 여전히 행복과는 거리가 멀었죠.

결혼을 하고, 승진을 하고, 아이를 낳고, 승진을 하고, 아이를 키우고 하다 보니 더욱 불행했습니다. 너무 힘들었죠. 눈도 따끔거리고, 어깨도 아프고, 뒷목도 당겼습니다. 콜레스테롤 수치, 간 수치는 올라갔고 혈액에는 중성지방이 많아지더군요. 고지혈증이라는 사실을 동료들에게 말했더니 그 정도는 가지고 있어야 인간적인 거라더군요. 청년은 불행했습니다.

자꾸만 왜 살아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청년은 이내 난 사춘기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일단 내일 일어나 회사에 가야 했으니까요.

청년은 점점 더 불안해졌습니다. 어렸을 때도 놀지 못한다는 불안감이 있었습니다. 취업을 못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도 있었죠. 그러나 이제는 돈이 없으면, 승진을 못하면, 상사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면, 집이 없으면, 아이가 아프면, 남들보다 잘 살지 못하면, 시대에 뒤쳐지면, 계속 그냥 이렇게 살다 죽으면 어떡하냐는 불안감이 생겼습니다. 불안이 점점 더 커짐을 느낍니다.

소확행이라는 말도 들었고, 욜로라는 것도 유행하기에 어떤 건지 한번 보기도 했죠. 맛집을 가면서 즐거움을 찾으려 했고, 더 잘살기 위해 하는 노력을 포기하고 그저 지금을 즐기려고도 해봤습니다. 그러나 불만은 쌓이고, 불안은 더욱 커져만 갔습니다. 청년은 불행했습니다.

청년은 우연히 책을 한 권 읽게 되었습니다. 한민이라는 처음 들어보는 문화심리학자가 쓴 책이었죠. 사실 문화심리학이라는 것이 있는 줄은 처음 알았습니다. 전혀 몰랐죠. 그 책의 제목은 <우리가 지금 휘게를 몰라서 불행한가>였습니다. 처음 들어본 말 투성이군요. 휘게는 당최 뭔가요? 청년은 휘바는 알지만 휘게는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책장을 넘겼습니다.

7페이지에 이런 말이 나오더군요.

행복은 나의 몫이라는 점이다. 진정한 행복은 나의 삶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복을 위한 과정 중에 경험되는 수많은 고난과 고통은 불행으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그럼 불행한 건 내 탓이라는 건가. 열심히 일하며 느끼는 고통과 불안은 행복인데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거라는 건가 생각하며 청년은 위가 살짝 꼬이는 걸 느꼈습니다. 책을 덮고 싶었지만 문장에 위트가 느껴져 계속 읽어 나갔습니다.

청년은 생각해 보면 자신이 사는 곳을 하찮게 여기는 말을 은연중에 많이 했던 것 같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우리 동네에는 먹을 곳이 정말 없다는 말과 멋진 사진을 보면 외국 같다는 말을 달고 살았죠. 헬조선이라는 말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나와 헬조선에 함께 살고 있는 청년들에 대한 동정심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책에서는 이런 생각이 날 불행하게 만든다고 하네요. 그리고 우리가 사는 곳은 그렇게 나쁜 곳이 아니랍니다. 그렇다고 너무 남 탓을 해서는 안되고요. 도대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저자는 지난 100년간의 우리 현대사를 보면 우리가 왜 불안한지 의문이 조금씩 풀린다고 하는군요. 전 세대가 다음 세대에 모범이 된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다는군요. 농업이 최우선이던 세대는 기술을 배워야 최고가 될 수 있었던 아들에게 모범이 될 수 없었습니다. 산업화 세대는 자식들로부터 퇴물 취급을 받았습니다. 남들이 2~300년간 겪은 일을 100년에 압축해서 겪은 우리들의 마음속에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을 수밖에 없죠.

또한 친일이냐 독립이냐, 이승만이냐 김일성이냐 항상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를 강요받고 그 선택이 생존과 연결되어 있던 우리의 현대사였습니다. 그러니 행복하냐고 물어 아니라 하면 불행한 이분법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거죠.

그리고 우리나라가 그렇게 나쁜 나라는 아니랍니다. 남들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을 해낸 나라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거죠. 지역갈등을 이야기하는데 지역갈등이 없는 나라는 없다고 하더군요. 신뢰도가 최악이라는 것도 그렇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신뢰는 정말 높은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입니다. 여행객이 꼽은 가장 안전한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이니 말이죠.

청년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내가 불행한 이유가 온전히 내 탓만이 아니라는 생각에 조금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국뽕을 한 사발 들이키니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꼈습니다. 그러나 So What?이라는 의문은 떠나가질 않았습니다.

계속 읽어 나가던 중 청년의 가슴을 때리는 말이 있었습니다.


"당신의 인생은 항상 좋았다. 당시에는 그것을 몰랐을 뿐"

정말 그렇더군요. 청년은 술자리에서 옛날이야기를 즐겁게 하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면서 행복을 느꼈죠. 저자의 말처럼 현재 불행하기 때문에 과거의 기억을 바꾸었죠. 현재의 행복을 위해 현재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과거가 아름답기 위해 현재 불행해질 필요는 없는데 말이죠.

청년은 조금은 알 것도 같은 기분이 조금 드는 상황을 잠정적으로 맞이하는 느낌적인 느낌으로 책을 읽어 나갔습니다.

청년은 133페이지에서 7페이지에서 읽었던 그 말을 다시 만나게 됩니다.

"목표를 설정하고 성취를 향해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불행은 아니다. 그 과정이 불쾌한 감정과 고통으로 점철된 것일지라도."

7페이지에서는 이 내용을 접하고 속이 답답하고 단전에서부터 지렁이가 가슴까지 기어 올라오는 듯한 뒤틀리는 느낌을 받았던 청년은 조금 다른 감정에 놀라는 듯했습니다. 국뽕을 맞아서 일까요? 아니면 조금 위로를 받아서 일까요?

이어서 작가는 부정적 정서가 곧 불행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고통을 느낀다고 불행한 건 아니라는 거죠. 그 고통을 느끼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있다면 행복이라고 말합니다. "성취의 순간을 위해 지금의 고통을 (싫지만) 참아"내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이 시간들은 성취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니 지금의 고통을 (기꺼이) 견뎌낸다'라는 겁니다.

청년은 목표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목표가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봤죠. 곧 소주나 한 잔 해야겠다는 말과 함께 깊은 한숨이 나왔지만 말이죠.

저자는 청년이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철학자의 이름을 거론하며 행복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행복하려면, "스스로 세운 규범에 따라 행동하되 그것이 보편 법칙이 되도록"한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모든 사람을 언제나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해야 한다.

청년은 칸트가 한 말이니 맞는 말일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해하려 노력해 봅니다. 그러다 행복은 역시 내가 해결해야 하는 거라 생각합니다. 칸트는 내 행복을 가져다 주지는 못할 거라 느끼며 책을 읽습니다. 절대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는 아니지만 말이죠.

청년은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는지 알려주지는 않을 거냐며 혼잣말을 하며 책장을 넘깁니다. 그러던 중 207페이지에서 이런 문장을 만납니다. "우리는 행복하지만 왜 행복해야 하는지 모른다"

청년은 정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도대체 왜 행복해야 하는 거지. 왜. 왜. 한민 교수가 알려줬으면 좋겠는데 그는 "행복하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에는 뭔가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며 자꾸 나에게 질문만 합니다.

"나는 행복하고 싶은가?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그 상태가 되고 싶은가? 나는 왜 그 상태가 되어야 하는가? 나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는가? 그전에 나는 누구인가?"

청년은 자꾸 질문을 하니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옴을 느낍니다. 속 시원하니 알려주면 좋겠는데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라는 존재에 대해 이렇다고 하는군요. "나의 환경과 조건 속에서 나의 의지와 선택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고. "나로서 산다는 것은 내게 주어진 환경과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의지를 발휘하여 삶을 이끌어 간다는 뜻"이라고요.

청년은 댕... 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청년은 단 한 번도 내 선택에 의해 '나'라는 존재가 형성되었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살아가면서 선택을 하지만 내가 의지를 발휘하여 삶을 이끌어 간다고 느낀 적도 없습니다. 그저 인생은 살아지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사실 점심메뉴마저도 내 적극적인 선택권은 없었으니까요.

청년은 행복은 내가 행복한 상태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행복한 상태가 왜 되고 싶은지 찾아내는 것이라 중얼거렸습니다. 그리고 행복한 상태가 되기 위해 목표를 적어보는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잘게 쪼개어 계획이라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럽고, 짜증이 나고, 조급해지고, 불안한 감정이 몰려오고, 후회가 되고, 분노가 자신을 덮치더라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자신은 기꺼이 이를 받아들일 이유가 있으니까요.

청년은 고민해 보기로 합니다. 작가가 던진 질문에 하나씩 답을 해보기로 합니다. 내가 행복한 상태가 무엇인지, 왜 난 그 행복한 상태가 되어야 하는지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시간이 조금 걸릴지라도 이를 종이에 적어보기로 했습니다.

청년의 아내가 청년을 부릅니다. 왜 애를 보지 않느냐고 합니다. 자신은 힘들다고 합니다. 그게 청년의 탓이라고 합니다. 네가 하고 싶은 것도 정도껏 하라고 합니다. 청년은 다 던져 버리고 떠나고 싶습니다. 다 내려놓고 나 혼자만을 위해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듭니다.

작가는 넌지시 그러나 강력히 청년에게 말합니다. 내가 원하는 일과 해야만 하는 일 사이의 균형을 잡는 것이 행복으로 가는 길일 수 있다고. 둘 사이의 간극이 크면 엄청난 지혜가 필요할 거라고. 그게 힘들다면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고. 선택은 엄마가 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바로 자신이 해야 하고 결과는 자신이 온전히 받아들여야 한다고.

청년은 책을 덮고 아이들 돌보러 나갑니다. 청년은 엄청난 지혜를 발휘해 보기로 다짐합니다.


<위의 서평에 언급된 책은 성장판 서평단 활동으로 출판사에서 책을 지원받았습니다만 서평은 전적으로 주관적인 견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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