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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Oct 18. 2019

우리는 왜 편해질수록 불편해지는가?

우리가 더더더 열심히 일하게 되는 이유

사냥을 하고 과일을 따는 원시인을 생각해 보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가? 하루 종일 사냥을 했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터덜터덜 동굴로 들어가는 씁쓸한 뒷모습이 떠오르지 않는가? 가난에 찌들고, 항상 굶주리고, 위험한 환경에 잠도 편히 못 잤을 것 같다.

수렵채집을 그만두고 농사를 지으며 한 곳에 정착한 농부의 이미지는 어떤가? 뭔가 훨씬 여유롭고, 자유롭고, 안정적인 삶이 그려진다. 냥하고 과일 따러 다녔을 때는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도 없었는데, 농부가 되니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생겼다고 좋아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그의 책 <사피엔스 Sapiens>에서 역사상 최대의 사기는 '농업혁명'이라고 말한다.

수렵 채집의 시기에 일하는 시간은 고작 4시간 정도였다. 그 외의 시간은 아이들과 놀거나 생산활동 이외의 시간을 보냈다. 항상 굶주리고 살았을 것 만 같은 원시 수렵채집인은 실상 그렇지는 않았다. 먹을 것은 크게 부족하지 않았다. 하루 중 70% 이상을 탄수화물만 먹는 현대인과는 달리 곡식을 거의 먹지 않고 탄수화물이 아닌 다양한 영양소를 섭취해서 건강도 좋았다. 수렵과 채집을 위해 달리고, 힘을 쓰니 따로 시간을 내어 운동을 하지 않아도 된다. 환경 변화에도 매우 유연했다. 주변의 환경이 생존에 불리하게 변하면 사는 곳을 옮긴다. 먹을 것이 풍부한 환경으로 가뿐하게 이사를 하면 된다. 그러나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농사는 노동 집약적인 산업이다. 허리도 펴지 않고 하루에 대부분의 시간을 일해야 한다. 먹는 음식이 탄수화물 위주로 바뀐다. 걷고, 달리는 것이 아닌 허리를 굽히고 일한다. 인체의 형성과 전혀 맞지 않는 자세와 행동이다. 건강에 좋을 리 없다. 생산량이 늘어나는 만큼 인구도 늘어난다. 늘어난 생산량은 아이에게 돌아간다. 수렵 채집 시절보다 여유가 생기지 않는다. 더 열심히 일해서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노력한다.

그렇다면 왜 수렵 채집인들은 농사를 지었을까?

유발 하라리는 "자신의 결정이 가져올 결과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갖고 있지 않았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이러면 일을 더 해야 하는 건 사실이지만, 수확량이 많이 늘어날 거야. 흉년 걱정을 할 필요가 더 이상 없을 거야. 아이들이 배가 고픈 채로 잠자리에 드는 일도 없을 거야."

수확량은 늘었지만 그 수확량은 더 많이 태어난 아이들에게 돌아갔고, 한 곳에 머무니 전염병이 생겼고, 머물고 있는 곳을 지켜야 할 인원이 필요하게 되었다. 농부들은 더욱 노력을 해야 했다. 두 배의 노력을 들여 수확량을 더더욱 늘려나갔다.

"바보 같아. 다시 돌아가면 되지!"

그렇다. 다시 수렵 채집으로 돌아가면 된다. 지금 보다 여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너는? 나는? 우리는? 다시 돌아갈 건가?

고등학교 3년을 미친 듯이 공부한다. 재밌는 일이라곤 쥐뿔도 없다. 내 고등학교 생활이 재미있었으면 좋겠다는 본능적인 열망으로 과거의 기억을 조작한다. 재미있었던 사건을 만들도 조작하고 과장하여 그래도 고등학교  때가 재밌었지라는 말을 술자리에서 한마디 하려 한다. 대학을 간다. 그 어려운 취업을 하고 하루에 9시간 이상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미친 듯이 일을 한다. 빨리 돈을 벌어 40세에는 은퇴해서 여유로운 나만의 삶을 누려보려 한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 주택 융자, 아이들 학원비까지 은퇴는커녕 현상 유지도 힘들다. 차도 있어야 하고 최신 휴대폰도 있어야겠다. 남들 사는 평수만큼의 아파트도 필요하다. 매년 해외여행도 가야 한다. 그런 삶이 아니면 아무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어떤가? 이 힘든 삶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갈 텐가? 이승윤과 윤택을 만나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나? 아니다. 장담하건대 나와 당신은 지금보다 2배의 노력을 하 위해 더욱 노력하는 걸 선택할 것이다.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는 역사의 몇 안 되는 철칙이 있다고 말한다. "사치품은 필수품이 되고 새로운 의무를 낳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일단 사치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그다음에는 의존하기 시작한다."

우리 엄마는 손빨래를 했지만 난 세탁기에게 맡긴다. 설거지도 식기세척기가 한다. 주판이 아닌 계산기, 아니 엑셀을 쓴다. 복잡한 계산도 100배는 빠르게 결과를 내놓는다. 파발도 띄우지 않고, 편지를 우체국에 맡기지도 않는다. 카톡을 보내고 이메일을 보낸다. 내가 하던 일과 내가 쏟던 시간의 대부분을 아웃 소싱했다. 그럼 나는 10배 여유로운 삶을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사치품이었던 스마트폰은 필수품이 되었고 이 스마트폰은 나에게 더 빠르게 일을 처리하고, 더 빠르게 생활을 개선하라는 의무를 지운다. 이동하며 업무 이메일을 작성하고, 에버노트를 이용해 데이터를 모으고, 노즈비를 활용해 시간을 관리한다. 쿠팡이나 G마켓으로 더 빠르게 물건을 사고, 더 합리적인 물건이 무엇인지 비교하는 데 시간을 사용한다.

난 여유로운가?

아니다. 세상이 10배 빨라졌고, 불안과 조급함은 10배 많아졌다.

난 왜 더더더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가?
왜 더더더 열심히 일하기로 마음먹고 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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