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파도, 파도는 눈이 없다.
그저 나에게 온다.
너무 당연해서 눈치채지 못하는 것들이 세상에는 많다. 내 곁에 있는 것이 너무 당연하기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 많다. 숨을 쉰다는 것이 그렇다. 난 한 순간도 빠짐없이 숨을 쉬고 있는데 이를 알지 못한다. 아니 알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고 몇십 년을 살다 보면 자연스레 나도 잊는다.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는다. 숨을 쉬는 것을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그리고 나에게 고통을 주는 감정들이 내가 된다. 짜증이, 화가, 원망이 바로 내가 된다. 쾌락과 행운이 나를 통제한다.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챈다.
온전히 내 호흡에 집중한다.
들어오는 숨과 나가는 숨을 알아차린다.
코 끝에 걸리는 바람과
올라가는 가슴과
부풀어 오르는 배를 느낀다.
들숨과 날숨이 교차되는 바로 그 순간의
잠시 잠깐의 멈춤이 있음을 알고 집중해 본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을 그대로 느껴본다.
그렇게 느끼다 보면,
좋은 감정 나쁜 감정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내 감정은 그것 그대로 옳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감정 때문에 고통받을 필요 없다는 것도 알게 된다.
감정은 마치 파도와 같다.
마치 파도처럼 그저 나에게 밀려왔다 밀려간다.
밀려드는 파도를 막을 길도, 밀려가는 파도를 막을 방법도 없다. 그러나 난 자꾸 그 파도를 막으려 한다. 백사장에 앉아 어떻게 하면 그 파도를 못 오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고요한 숲길을 혼자 걷고 있을 때
따뜻한 클래식 기타의 소리를 들을 때
향긋한 차 향이 내 목구멍에 머물 때
공원 벤치의 살랑이는 바람이 느껴질 때
책을 읽고 있을 때
이럴 땐, 감정은 단지 파도라는 것을 안다. 파도는 눈이 없다. 그저 나에게 온다. 나를 확인하고 오는 것이 아니다. 어떠한 의도도 없다. 나에게 짜증을 줄 의도도, 화를 돋우려 하는 의도도 없다. 나를 물 먹이려는 의도도 아니며, 날 억울하게 하려는 것도 나에게 피해를 주려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에게 오는 것이다. 이 사실을 자주 잊는다.
나에게 오는 파도를 막을 길은 없다. 그저 나에게 오는 것이다. 그것뿐이다. 없앨 필요도, 없애려 노력할 필요도, 막으려는 방법을 생각할 필요도 없다. 그저 파도가 오면 오는구나, 가면 가는구나 하면 된다.
나에게 오는 감정이란 그런 거다.
그저 백사장에 앉아 파도를 구경한다. 지루하면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고 모래놀이를 한다. 아내의 눈을 바라보며 저 파도소리를 들어보라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