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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Nov 19. 2019

15km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었던 3가지 이유

15km는 조금 만만해 보였다.

평생 마라톤을 나간 건 총 3번이다. 20살 때 아빠의 무언의 강요(?)로 10km를 얼떨결에 뛰었고, 30대 초반에 회사에서 강제로 10km를 달렸다. 올해 3월, 자발적으로 동아서울마라톤 10km에 나갔다. 그 이후 아침에 살짝 달리기도 하고 걷기도 했지만 마라톤을 목표로 연습을 한 적은 없다. 그러던 중 '가슴속 주파수를 ON AIR' 하라는 광고를 보았다.

15km가 매력적이다.

내 눈을 잡아 끈 건 "15km 코스"였다. 사실 대부분의 대회는 10km 위가 하프 마라톤이다. 일단 이름에서부터 마라톤이 들어가니 위압적이다. 21km를 달려야 한다. 두 배가 넘는다. 나는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러나 15km는 왠지 할만해 보였다. 두 배는 아니다. 겨우 1.5배 일뿐이다. 그래서 충동적으로 신청했다.


아내는 내가 마라톤에 나간다고 하니 굉장히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내에게 주말은 굉장히 소중하다. 아내는 일주일 내내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항상 그녀의 시간엔 아이가 겹쳐다. 아내에게는 아내 자신 만을 위한 시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그 시간을 위해 꼭 필요한 내가 사라진다. 아내에게는 세상이 사라질 법한 위기이다. 이러한 위기를 내가 충동적으로 저질러 버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일단 신청은 해버렸는걸. 그냥 그렇게 얼굴에 철판 깔고 밀고 나가기엔 내 심장은 너무 뛰고 있었다. 아내에게 나가지 않겠노라고 말했다.


아내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난 잠을 청했다. 다음 날 아침 새벽 6시 39분경이었다. 둘째가 똥이 마렵다며 깼다. 아내도 덩달아 깼다. 나와 눈이 마주친 아내는 나에게 한 마디 건넸다.


"그거 얼마야?"
"응? 뭐?"
"마라톤!"
"아... 그거 14만 원이야?"
"뭐... 미...X"
"아니야, 아니야 농담이야. 4만 원이야."


목숨을 걸고 농담을 건네다니...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놈이다. 어쨌든 난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첫째는 아직 자고 있었고, 아내는 돈이 조금 신경 쓰이는 듯했다.


"가방 준다는 데... 가방만 받아 가지고 얼른 올까?"
"몇 시에 시작인데?"
"9시 시작이니까, 8시쯤 나가면 될 거야?"
"그래! 갔다 와"


9시 즈음 아내에게서 카톡이 왔다.

완주는 못해도 간 김에 뛰고 와
지금 밥하고 첫째도 자는데


아내의 관대함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완주는 하련다. 일단 시작했으니 완주는 해야 할 것 아닌가. 아내의 뜻은 집에 빨리 오라는 거겠지. 그럼 빨리 완주하고 집에 빨리 간다.


1시간 26분. 15km를 1시간 26분 만에 달렸다. 별 것 아닌 것처럼 느껴지겠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서 달렸다. 표에서 4분이나 단축했다. 온몸의 근육이 자신을 달래 달라고 아우성쳤다.



완주할 수 있었던 3가지 이유

중간에 그만두고 싶었다. 완주가 불가능할 것 같았다. 10km와 15km는 다른 세상이었다. 따로 훈련이나 연습을 하지 않았기에 더 그랬다. 그러나 견디어 냈고 완주를 할 수 있었다. 성취감을 얻었고, 나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ㅣ이유 1. 충동적인 시

내가 완주할 수 있었던 이유는 충동적으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온에어런 마라톤 광고를 보는 순간 난 충동적으로 터치했고, 접수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고 고민하고 일정을 체크했다면 난 달릴 수 없었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난 성취감도 느끼지 못했을 것이고, 한강을 오른쪽에 두고 달리고 왼쪽에 두고 달리는 체험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시작은 그 일의 가장 좋은 부분이다 (플라톤)
일의 시초는 육체의 발동에 있다. (카네기)
천 리 길도 발 밑부터 시작한다. (노자)
처음에는,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갈 수는 없겠지만, 당신이 지금 있는 곳에서 출발할 수는 있을 것이다. (미상)


이런 명언들을 늘어놓지 않더라도 일단 시작해 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설사 그것이 충동적일지라도 말이다. 20년이 지났을 때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실망이 더 클 것이라는 마크 트웨인의 말처럼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20년이고 10년이고 무조건 후회를 하게 될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이 지난다면, 당신은 당신이 한 일보다는, 당신이 하지 못한 일에 더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기준점을 과감히 버려라. 안전한 항구에서 벗어나, 멀리멀리 항해해보자. 당신의 항해에서, 무역풍을 잡아보자. 탐색하고, 꿈꾸고, 발견해보자. (마크 트웨인)


꿈이 있다면 일단 종이에 적어본다. 그리고 충동적으로라도 시작해야 한다. 꿈을 이루기 위한 작은 습관이라도 시작하면 뭐라도 된다. 고양이라도 그려야 어떻게 해서든 호랑이를 만들 것 아닌가. 백지를 계속 가지고 있어서는 호랑이는커녕 점도 하나 찍을 수 없다.



ㅣ이유 2. 끝을 알고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표 직전에 그만두고 있을까? 알 수는 없겠지만 아마 목표를 이루지 못한 사람들의 80~90% 정도 아닐까?


그 이유의 근거는 15km 마라톤에서 내가 제일 힘들었던 구간이 바로 10~13km 구간이었기 때문이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고 발바닥, 종아리, 허벅지 모두 아팠다. 흔들고 있던 팔까지 시큰했고 신발 안으로 작은 돌멩이도 들어왔다. 멈추고 걷고 싶었다. 옆에서 걸어가는 사람들을 보며 그저 멈추고 날 편안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난 조금 있으면 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구간만 지나면 곧 도착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버틸 수 있었다. 온라인 게임 레벨업이 현실보다 쉬운 이유는 바로 얼마나 게이지를 더 채우면 레벨 업이 되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서 도착점을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죽을 만큼 힘들다면 도착점이, 목표로 했던 바로 그 순간이 곧 다가온다는 뜻이 아닐까. 마라톤이랑 인생을 똑같다고 모두들 입을 모아 말하니까.



ㅣ이유 3. 은 응원

제일 힘들었던 건 10~13km 구간이었지만 순간순간 힘들었던 건 꽤 많다. 3km가 넘어가는 구간이 그랬으며 반환점에 다다르기 전이 그랬다. 조금씩 힘들어지는 데 아직 3km밖에 못 갔다. 힘들어 죽겠는데 아직 반환점도 못 돌았다. 이런 생각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그때 나에게 힘을 주었던 건 바로 응원이었다.


직원인지, 자원봉사인지 모르겠지만 어르신들이 코스 중간중간에 서 계셨다. 아마도 옆길로 빠지는 것을 방지하고 안전사고에 바로 대처하기 위함 일 거다. 3km를 지나는 지점의 한 어르신이 이렇게 외쳤다. "파이팅! 파이팅!" 별 것 아닌 이 말이 너무 큰 힘이 되었다. 잠시나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6km를 지나는 시점에서도 이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반환점을 돌아 돌아올 때도 나에게 응원의 말을 외쳤던 그 어르신의 응원을 기대했다. 그리고 난 그 응원을 듣고 다시 한번 숨을 고를 수 있었다.


누군가의 작은 호의가 나에게는 큰 힘이 되는 것이 세상이다. 작은 도움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좌우할 만한 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나에게 힘을 준 그 어르신과 함께 사진을 찍지 못한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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