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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살 딸에게 책 읽어 주는 아빠.

책 읽어 주기의 마법?

by 성실한 베짱이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의 작가 표정훈은 그의 페이스 북에 자녀 독서 교육에 대한 글을 남겼다.


'책/독서 관련 강연 때마다 예외 없이 비슷한 질문이 나오지만 솔직히 답변하지 못했던 질문들'에 대해서 '솔직한' 답변을 했다. 그중 한 질문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Q) 자녀들 독서 교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독서 교육한 적 없습니다. 부모가 뭘 가르치려들면 자식은 더 싫어합니다. 그냥 책 많이 사서 쌓아놓고 틈틈이 읽는 모습이 자식들에게 노출된 것 정도가 교육이라면 교육? 하지만 별 영향을 미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책 읽기를 좋아했다. 매일매일 책을 읽었다. 위인전을 참 많이 읽었다. 10번 정도 반복해서 읽었던 듯하다. 삼국지도 많이 읽었고, 먼 나라 이웃나라는 책이 다 떨어질 때까지 보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책은 내 손을 서서히 떠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자, 내가 읽는 책은 오로지 문제집 밖엔 없었다. 양자역학, 생물학, 문학작품, 삼권분립, 자유론, 수요와 공급, 보이지 않는 손, 고흐와 쇼팽에 대해서 문제집을 통해 접했다. 문제집의 토막 난 글로 나에게 이에 대한 설명을 짧게 늘어놓고 맞는 것과 틀린 것을 1번에서 5번 중에 고르게 했다.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책을 집어 들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다. 대학 때는 책을 읽는 사람이 그럴듯해 보인다는 사실을 눈치챘고, 그럴듯해 보이기 위해 책을 읽는 척했다. 군대에서는 책 말고는 할 일이라곤 후임을 갈구는 것 밖엔 없었기에 그럴 바엔 그냥 책을 읽기로 했다. <드래건 라자>부터 <총. 균. 쇠.>까지 군대에서 읽었다. 그리고 독서 리스트라는 것까지 작성했다. 대대장이 독서 리스트를 발견하고 2박 3일 휴가까지 보내줬으니 독서 리스트는 맡은 바 소임을 다 했다.


영어 공부를 해야 했기에 전역 후 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난 역사를 전공했지만 영어를 공부해야 했고, 내 친구는 부동산을 전공했지만 역시 영어를 공부해야 했다. 토익 900점이라는 보편화된 점수에 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난 900점에 도달하지 못했


취업을 하고도 책은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업무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했고, 그 보다 선배, 동기들과의 진한 술자리를 통해 사회생활의 절대 필수품이며 가장 전념해야 하며, 내 역량 평가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네트워킹"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닌 지 10년이 지난 지금 다행스럽게도 네트워킹보다는 책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 멀리멀리 돌아왔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난 지금 책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많은 위안을 받고 있다. 만족감을 주는 많은 취미 활동 중 가장 지속력이 좋다. 완벽한 가성비를 자랑한다. 이 단계까지 가는 길이 조금 험난하지만 다행스럽게 살짝 발은 걸친 것 같다.


난 내 아이가 이런 가성비 갑인 취미를 가졌으면 한다. 덤으로 뇌가 섹시해지고 어쩌면 좋은 성적까지 얻을 수 있는 바로 독서 말이다.


일단 '집에 책을 많이 사서 쌓아놓고 틈틈이 읽는 모습'을 보여줬다. 일부러 더 책을 읽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함께 서점도 갔다. 퇴근길에 책을 2~3권씩 사다 주었다. 심심하다는 아이에게는 항상 책을 권했다.


어떤 프로그램의 선생님은 아이에게 전쟁이 나면 가족들이 어떤 물건을 챙길 것 같은지 질문했다. 아빠에 대해 묘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전쟁이 나면 엄마는 울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빠는 책을 많이 챙기고 있을 것 같고요.


진짜 전쟁이 난다면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아이는 아빠가 책을 가장 먼저 챙길 것이라 생각했다. 이 정도면 성공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목적이 있어 집에서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고, 아이는 책을 좋아하리라 생각했다.


어이 딸~! 이 책 한 번 읽어 볼래?
아... 싫어. 책 읽는 거 재미없단 말이야. 나 인형 놀이할래.
응? 왜? 이거 재미있을 것 같은데...
싫어! 인형 놀이 아니면 마인 크래프트 하는 게 훨씬 재밌어!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책을 좋아할 줄 알았건만... 그렇지 않았다. 나도 아직까지는 읽기보다는 '넷플릭스'가 더 재미있다. 그렇더라도 책을 싫어할 줄은 몰랐다. 아이가 내 예상과 정 반대로 나오니 적잖이 당황했다.


어린이 책 평론가 한미화는 그의 책 <아홉 살 독서수업>에서 읽기가 숙제 같은 의무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재미로 부모와 아이와 책이 이어져야 한다. 또한 부모는 아이의 읽기 능력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단다. 아이는 이제 단지 글자를 알았을 뿐이다.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고 눈으로 따라가며 글자를 알 수 있지만 내용이나 줄거리를 이해하기엔 부족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이해할 거라 지레짐작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듣는 것이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가 읽기를 시작하면 책 읽어 주기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혼자 읽기를 강요한다. 나도 그랬다.


또 한미화는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책을 매개로 부모와 아이가 정서적으로 단단하게 연결되는 소중한 순간이다. 글을 깨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읽기 능력이 향상된다. 또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10대 초반까지 책 읽어주기를 이어가면 사춘기도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아이에게 책 읽어 주는 행위를 마법과 같이 말한다. 난 이 마법을 일단 믿어 보기로 했다. 뭐... 마법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마법 비슷한 거라도 일어나지 않겠다. 아이가 안정감도 느끼고 아빠의 사랑도 느끼고 긴장도 풀린다고 하지 않는가. 사춘기를 별 탈 없이 넘기는 것 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오늘부터 9시 30분에 아빠가 책 읽어 줄까?
책? 왜?
아니. 그냥. 읽어주고 싶어서
그래!


그래서 시작했다.

한 달 전부터 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있다. 일주일에 3~4번 정도 읽어 주는 것 같다. <마당을 나온 암탉> 다 읽었고, 이제 <휴대폰에서 나를 구해 줘!>를 읽는다. 하루에 한 챕터를 읽어준다. 권을 다 읽고 아이 손을 잡고 책을 사러 서점에 가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이제 아이는 먼저 책을 읽어 달란다. 빠가 책 읽어 주는 시간을 기린다. 정말 마법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혹시 아나. 정말 마법이 일어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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