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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Dec 16. 2019

10살 딸에게 책 읽어 주는 아빠.

책 읽어 주기의 마법?

<혼자 남은 밤, 당신 곁의 책>의 작가 표정훈은 그의 페이스 북에 자녀 독서 교육에 대한 글을 남겼다.


'책/독서 관련 강연 때마다 예외 없이 비슷한 질문이 나오지만 솔직히 답변하지 못했던 질문들'에 대해서 '솔직한' 답변을 했다. 그중 한 질문이 내 눈길을 잡아끌었다.


Q) 자녀들 독서 교육은 어떻게 하셨나요?

독서 교육한 적 없습니다. 부모가 뭘 가르치려들면 자식은 더 싫어합니다. 그냥 책 많이 사서 쌓아놓고 틈틈이 읽는 모습이 자식들에게 노출된 것 정도가 교육이라면 교육? 하지만 별 영향을 미친 것 같지도 않습니다.


나는 초등학교 때까지 책 읽기를 좋아했다. 매일매일 책을 읽었다. 위인전을 참 많이 읽었다. 10번 정도 반복해서 읽었던 듯하다. 삼국지도 많이 읽었고, 먼 나라 이웃나라는 책이 다 떨어질 때까지 보았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책은 내 손을 서서히 떠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를 들어가자, 내가 읽는 책은 오로지 문제집 밖엔 없었다. 양자역학, 생물학, 문학작품, 삼권분립, 자유론, 수요와 공급, 보이지 않는 손, 고흐와 쇼팽에 대해서 문제집을 통해 접했다. 문제집의 토막 난 글로 나에게 이에 대한 설명을 짧게 늘어놓고 맞는 것과 틀린 것을 1번에서 5번 중에 고르게 했다. 책은 거의 읽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책을 집어 들기 시작한 건 군대에서다. 대학 때는 책을 읽는 사람이 그럴듯해 보인다는 사실을 눈치챘고, 그듯해 보이기 위해 책을 읽는 척했다. 군대에서는 책 말고는 할 일이라곤 후임을 갈구는 것 밖엔 없었기에 그럴 바엔 그냥 책을 읽기로 했다. <드래건 라자>부터 <총. 균. 쇠.>까지 군대에서 읽었다. 그리고 독서 리스트라는 것까지 작성했다. 대대장이 독서 리스트를 발견하고 2박 3일 휴가까지 보내줬으니 독서 리스트는 맡은 바 소임다 했다.


영어 공부를 해야 했기에 전역 후 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난 역사를 전공했지만 영어를 공부해야 했고, 내 친구는 부동산을 전공했지만 역시 영어를 공부해야 했다. 토익 900점이라는 보편화된 점수에 도달해야 했기 때문이다. 물론 난 900점에 도달하지 못했


취업을 하고도 책은 역시 우선순위에서 밀렸다. 업무를 배우는 것이 더 중요했고, 그 보다 선배, 동기들과의 진한 술자리를 통해 사회생활의 절대 필수품이며 가장 전념해야 하며, 내 역량 평가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네트워킹"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회사를 다닌 지 10년이 지난 지금 다행스럽게도 네트워킹보다는 책에 조금 더 집중하고 있다. 멀리멀리 돌아왔지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난 지금 책을 매우 좋아한다는 것이다. 책을 통해 많은 위안을 받고 있다. 만족감을 주는 많은 취미 활동 중 가장 지속력이 좋다. 완벽한 가성비를 자랑한다. 이 단계까지 가는 길이 조금 험난하지만 다행스럽게 살짝 발은 걸친 것 같다.


난 내 아이가 이런 가성비 갑인 취미를 가졌으면 한다. 덤으로 뇌가 섹시해지고 어쩌면 좋은 성적까지 얻을 수 있는 바로 독서 말이다.


일단 '집에 책을 많이 사서 쌓아놓고 틈틈이 읽는 모습'을 보여줬다. 일부러 더 책을 읽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함께 서점도 갔다. 퇴근길에 책을 2~3권씩 사다 주었다. 심심하다는 아이에게는 항상 책을 권했다.


어떤 프로그램의 선생님은 아이에게 전쟁이 나면 가족들이 어떤 물건을 챙길 것 같은지 질문했다. 아빠에 대해 묘사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며 나에게 말씀해 주셨다.


전쟁이 나면 엄마는 울고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빠는 책을 많이 챙기고 있을 것 같고요.


진짜 전쟁이 난다면 책은 거들떠보지도 않겠지만 아이는 아빠가 책을 가장 먼저 챙길 것이라 생각했다. 이 정도면 성공이 아닌가 생각했다. 물론 목적이 있어 집에서 책을 읽은 건 아니지만 말이다. 어쨌든 책 읽는 모습을 많이 보여줬고, 아이는 책을 좋아하리라 생각했다.


어이 딸~! 이 책 한 번 읽어 볼래?
아... 싫어. 책 읽는 거 재미없단 말이야. 나 인형 놀이할래.
응? 왜? 이거 재미있을 것 같은데...
싫어! 인형 놀이 아니면 마인 크래프트 하는 게 훨씬 재밌어!


충격을 받았다. 당연히 책을 좋아할 줄 알았건만... 그렇지 않았다. 나도 아직까지는 읽기보다는 '넷플릭스'가 더 재미있다. 그렇더라도 책을 싫어할 줄은 몰랐다. 아이가 내 예상과 정 반대로 나오니 적잖이 당황했다.


어린이 책 평론가 한미화는 그의 책 <아홉 살 독서수업>에서 읽기가 숙제 같은 의무가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재미로 부모와 아이와 책이 이어져야 한다. 또한 부모 아이의 읽기 능력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이 있단다. 아이는 이제 단지 글자를 알았을 뿐이다.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고 눈으로 따라가며 글자를 알 수 있지만 내용이나 줄거리를 이해하기엔 부족하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이해할 거라 지레짐작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목소리로 책을 읽어 주는 것을 더 좋아한다. 듣는 것이 읽고 이해하는 것보다 더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모는 아이가 읽기를 시작하면 책 읽어 주기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혼자 읽기를 강요한다. 나도 그랬다.


한미화는 "책을 읽어주는 시간은 책을 매개로 부모와 아이가 정서적으로 단단하게 연결되는 소중한 순간이다. 글을 깨친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읽기 능력이 향상된다. 또 아이에게 정서적 안정감을 줄 수 있다. 10대 초반까지 책 읽어주기를 이어가면 사춘기도 별 탈 없이 넘어갈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아이에게 책 읽어 주는 행위를 마법과 같이 말한다. 난 이 마법을 일단 믿어 보기로 했다. 뭐... 마법이 일어나지 않을 수는 있어도 마법 비슷한 거라도 일어나지 않겠다. 아이가 안정감도 느끼고 아빠의 사랑도 느끼고 긴장도 풀린다고 하지 않는가. 사춘기를 별 탈 없이 넘기는 것 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에게 물어봤다.


오늘부터 9시 30분에 아빠가 책 읽어 줄까?
책? 왜?
아니. 그냥. 읽어주고 싶어서
그래!


그래서 시작했다.

한 달 전부터 난 아이에게 책을 읽어 주고 있다. 일주일에 3~4번 정도 읽어 주는 것 같다. <마당을 나온 암탉> 다 읽었고, 이제 <휴대폰에서 나를 구해 줘!>를 읽는. 하루에 한 챕터를 읽어준다.  권을 다 읽고 아이 손을 잡고 책을 사러 서점에 가는 것도 큰 즐거움이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이제 아이는 먼저 책을 읽어 달란다. 빠가 책 읽어 주는 시간을 기린다. 정말 마법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해 본다. 혹시 아나. 정말 마법이 일어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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