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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Nov 29. 2019

경련, 응급실 그리고 김밥.

우리는 쉽게 좋아하지 않는다.

찐이가 갓 돌이 지날 무렵. 아내에게 전화가 왔다. 목소리의 다급함이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겨우겨우 알아들은 말은 아이가 이상하다는 것과 경기를 했다는 것이었다. 아내는 울지는 않고 있었다. 이를 악 물고 눈물이 나올 틈을 막고 있었다.


아이의 '경련'을 본 적이 있는가?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경기'이다. 혹시 아직까지 본 적이 없다면 평생 보지 않기를 바란다. 아이의 경련을 바라보는 그 순간은 상상하기 조차 힘든 두려움이 날 감싼다. 경련을 하는 1분에서 2분간, 아이는 의식을 잃는다. 그리고 크게 꿈틀댄다. 한 번, 두 번, 세 번...... 제발 이제 그만. 제발 돌아오렴. 제발 아빠를 쳐다보렴. 제발. 제발. 아이에게 눈을 떼지 않고 속으로 수 십 번, 수 백번 되뇐다.


이러다 우리 아이를 놓쳐 버리는 건 아닐까.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머릿속에 들어온다. 서둘러 이 생각을 지운다. 다시 들어오면 머리를 흔들어 쫓아낸다. 들어오고 쫓아내기를 반복하다 보면 다시 아이가 내 품으로 돌아온다. 경련을 하는 동안 그렇게 힘을 주고 몸을 뒤틀어 세상을 붙잡았나 싶다. 경련을 멈춘 아이는 힘 없이 잠이 든다. 우리도 잠시 바라보며 서로에게 눈길을 주고 깊은숨을 쉰다.


이런 경련을 우리 아이가 하루에 10번을 넘게 한다. 매번 나쁜 생각이 머릿속에 스멀스멀 퍼진다. 입 밖에 내면 너무 두렵고 한 없이 슬퍼진다. 입을 다물고 나쁜 생각을 꿀꺽 삼켜버린다. 상한 음식을 억지로 삼킨 것처럼 기분 나쁜 울렁거림이 계속된다. 그렇게 삼키길 수 차례. 울고 싶지만 아내와 나는 울지 않았다. 나쁜 생각을 너무 삼켜 배가 불렀다.


뇌파 검사를 하고, MRI를 찍고, 혈액 검사를 하고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고 통원을 하고 응급실로 달려가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찐이도 나도 아내도 지쳤다. 그러나 지치지 않은 척을 했다. 그래야 했다. 새벽에 응급실에서 집으로 돌아오며 우린 김밥을 사기로 했다. 그리고 웃으며 맛있게 먹기로 했다. 집이 좋다며, 응급실은 이제 가지 말자며 서로의 입에 김밥을 넣어 주었다.


아내는 개인 정보에 매우 민감하다. 가입한 사이트는 네이버와 다음 정도. 개인 정보가 유출될까 두려워 어떤 사이트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내 명의의 핸드폰을 10년이나 쓰고 있다. 얼마 전 '넷플릭스'에 대해 말했더니 그게 뭐냐고 했다. 4차 산업혁명이고 뭐고 이세돌이 알파고한테 바둑을 졌던 이겼던 관심 없다. 스마트 폰으로 하는 은행 업무는 왠지 신뢰가 가지 않는다. 컴퓨터를 켜고 공인인증서가 담긴 USB를 꽂고 보안카드의 비밀번호를 넣어야만 안전한 듯하다.


이런 우리 아내가 아주 탁월한 분야가 있다. 바로 검색이다. 특히 '약'검색은 국내 최고다. 어떤 성분이며, 부작용은 뭔지, 어떻게 먹어야 하며 적당량이 얼마인지 단번에 찾아낸다. 그 약을 복용했던 사람들의 글들을 찾아낸다.


이에게 항경련제를 먹이기로 했다. 아내는 항경련제에 대한 지식도 검색을 통해 미친 듯이 흡수하기 시작했다. 항경련제는 굉장히 강한 약이란다. 그렇게 많던 아이의 경련을 멈추게 하는 약이니 당연하다 싶었다. 그래서 부작용도 많다고 한다. 탈모, 저성장, 흥분 유도, 구토, 발달 장애, 우울증 등등 수도 없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작용이 약마다 다르다고 한다. 항경련제 종류는 많다. 우리 아이도 2가지 종류를 먹었다.


아이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은 막았을지 몰라도 아내의 건강이 악화되는 건 막아내지 못했다. 항상 걱정을 해야 했고, 통계적으로 1%도 안 되는 확률을 가진 부작용이 나타나는지를 항상 신경 써야 했다. 아내는 매일매일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에너지가 고갈되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 진건 당연한 수순이다. 아내는 자주 가슴이 쿵쾅쿵쾅 뛴다. 불안감에 밤에는 잠도 오지 않는다.


아내는 자신의 건강과 바꿔 검색을 했다. 아이에게 나노 단위의 관심을 보였고 양자역학 수준의 관찰을 했다. 아내의 이러한 행동은 아이를 건강하게 했다. 잘못된 의사의 진단을 발견하기도 했다. 우리 아이에게 약을 처방할 때 의사는 아내의 말을 듣고 한번 더 생각한다.


항경련제를 먹기 시작하고도 경련은 계속되었다. 감염성 질병에 걸려 열이라도 나면 여지없었다. 우리는 돌아가며 아이의 곁을 지켰다. 내 휴가는 여행이 아닌 병원에 대부분 투자되었다. 응급실을 가족여행을 가듯 자주 갔다. 젠장. 응급실이 조금씩 편해지기도 했다.


아이의 수술이 있었다. 일정이 잡혔고 휴가를 내려했다. 부장님께 어서 보고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전무: 아! A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지?
부장: 네. 작년에 그룹 전체 총간사를 따냈습니다. 그룹의 절반만 거래를 하고 있었는데, 전부다 거래를 시작했습니다.
전무: 음. 잘 되었구먼. 담당자가 누구지?
부장: 네 이 과장입니다.
전무: 좋아. 총 간사 이후 일정을 어떻게 되는 거야?
부장: 네. 그쪽 인사, 재무 부사장에게 브리핑이 2월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전무: 그래. 나도 참석할 테니 잘 준비하라고. 브리핑은 누가 하지?
부장: 네 이 과장이 진행하기로 했습니다.


이 대화가 오고 가는데 난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브리핑 일자가 찐이의 수술 날짜와 겹쳤다. 전무의 차를 타고 고객사로 향하는 차 안에서 문자를 확인했다.


지금 수술실 들어갔어.


슬픔과 무력감. 아이의 수술실 앞에 있지 못한 슬픔과 그럼에도 이 브리핑을 잘 해내야만 한다는 무력감이 공존했다.


일요일 새벽. 찐이가 경련을 했다. 응급실로 달려갔다. 월요일 오전에 경쟁 프레젠테이션이 있었다. 아내와 찐이 곁에서 밤을 보냈다. 아침 6시에 집으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고 경쟁 프레젠테이션을 하러 갔다.


작년 1월, 항경련제를 끊었다. 같은 해 4월, 7월에 경련을 한번 하긴 했지만 예전처럼 하루에 여러 번 하지는 않았다. 약을 끊은 지 약 1년 4개월. 경과를 보러 병원을 갔다.


아주 잘 지낸 것 같군요.
경련에 대한 예후는 매우 좋아요.
뭐... 비록 경련을 하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적게 한 겁니다.
경련에 대해서는 아주 좋아졌다고 이야기하고 싶네요.


아내와 나는 쉽게 좋아하지 않는다. 쉽게 좋아했다가 실망한 적이 많다. 이번에는 쉽게 좋아하지 않았다. 서로 바라보았다. 서로를 한동안 꼭 안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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