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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Dec 03. 2019

그저 지금, 옆에서, 함께 사는 일

발달장애 아이의 부모로 살아가는 일

찐이와 같은 어린이 집을 다니는 아이의 엄마게 이런 말을 들었다.


아이가 수술을 했을 때 남편이 이런 말을 했단다. 아이가 그냥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 그런 말을 듣는 순간 남편이 인간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남편과 상종도 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러나 그 이후 다른 아이들과는 달라도 너무 다른 아이의 모습을 엄마는 보았다. 그 아이는 엄마의 시간을 빼앗아갔단다. 그리고 너무 힘들었단다. 아마 시간만 빼앗아 간 것이 아닐 거다. 밑바닥을 볼 수 있을 만큼 엄마의 감정과 체력을 모두 빼앗아 갔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 그 수술을 했을 때 아이가 죽었으면 이라고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했다고 했다.


아내를 통해 이 이야기를 들었다. 그 엄마가 느꼈을 감정적, 육체적 고통이 몰려왔다. 그리고 세포 하나하나에 스며들었을 죄책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긋나는 타이밍과 '꿈'

지금 7살 찐이는 태어날 때부터 타이밍이 조금씩 어긋났다. 목을 가누어야 하는데, 뒤집어야 하는 데, 앉아야 하는데, 걸어야 하는데, 말을 해야 하는데... 우리 찐이는 그러지 못했다. 무언가 해야 할 타이밍을 도무지 잡지 못하고 있었다.


우리는 조금씩 어긋나는 타이밍을 탓했다. 아이를 믿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을 탓했다. 믿고 열심히 노력하면 우리 아이는 뒤틀린 타이밍을 조금씩 바로 잡을 거라 여겼다. 동시에, 그 타이밍이란 것을 어쩌면 평생 바로 잡을 수 없을 거란 생각을 했다.


아이가 다른 아이들처럼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믿음은 절대적이어야만 했다. 믿어야만 했다. 믿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리는 절대 선이었다. 당시에는 그랬다.- 과 그러지 않을 거라는 두 생각이 불편하게 내 안에 같이 살고 있었다.


대척점에 있는 두 생각을 혼란스럽게 오고 갈 무렵 꿈을 꾸었다. 그 꿈에서는 찐이가 없었다. 내 집에, 내 가족 안에 찐이가 없는 꿈이었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제발 이런 꿈을 꾸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그러나 꿈은 가끔씩 날 찾아왔다. 꿈에서 만이 아니었다. 길을 걷다가도, 일을 하다가도 그 꿈은 생각이 되어 날 찾아왔다.


 몸은 가루가 되어 버렸다. 죄책감이 날 짓 눌렀다.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린 나를 탓했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냐며 더욱 날 짓눌렀다. 그래야만 그런 생각을 하는 나를 견딜 수 있었다. 누르면 누를수록 난 흩날리고 있었다. 조금씩 흩어져 세상에 흩뿌려지고 있었다.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날 죽여버릴 것 같았다.


찐이가 잡아당기는 내 머리채

이렇게 조금씩 나를 흩뿌리고 있을 무렵 아이가 말했다. "아빠"라고. 내 눈을 바라보며 "아빠"라고 말했다. 그리곤 내 머리를 잡아당겼다. 자신의 모든 힘을 다해서 내 머리를 끄집어 당겼다. 아팠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팠다.


그 아픔으로 찐이는 나에게 말했다. 그냥 같이 살자고. 옆에서 같이 살자고. 뭐가 중요하냐고. 내가 있다는 게 중요한 게 아니냐고. 지금 아픈 걸 느끼듯 살자고. 이 아픔은 조금만 지나면 없어진다고. 과거도 미래도 아닌 바로 지금을 그저 살자고. 그래도 자꾸 미래가 생각나면 내가 한 번 더 머리채를 잡아당겨 주겠다고


손가락에 가시가 박힌 듯 아프다. 가시가 박힌 뒤에 몰려오는 이물감이 기분 나쁘다. 가시를 빼어버리고 싶다. 온 손가락을 헤집어서라도 이 이물감에서 벗어나고 싶다. 근데 이 이물감이 왼손에도, 발가락에도, 등에도, 목에도 느껴진다. 우리 아이가 장애가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순간 온몸에 이물감이 느껴진다.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는다. 평생이 가도 적응이 될 모르겠다.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 두렵다. 아이와 함께 살아갈 앞으로가 무섭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다. 편견과 차별이 무차별적으로 나에게 다가올 것만 같다. 배제하고 격리시키려는 사람들의 손길이 다가오는 것만 같다.


그럴 때마다 찐이가 잡아당기는 내 머리채를 생각한다. 그때의 그 아픔을 생각한다. 그러면 '지금'으로 돌아온다. 이와 찐이의 누나와 그리고 아내와 함께 있는 지금 이 순간으로 돌아온다. 그렇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이다. 찐이가 잡아당기는 머리채가 날 깨운다. 찐이가 나에게 말해준다. 그냥 날 보라고. 그저 옆에서 사는 거라고. 그거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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