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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Nov 25. 2019

이번 생일은 왜 이리 특별하게 느껴지는지 잘 모르겠지만

생일 축하합니다. 아내에게 쓰는 편지

오늘은 당신의 생일 이군요. 매년 찾아오는 생일인데 이번엔 유난히 신경이 쓰입니다. 왜일까요? 지금 그 이유를 찾아보려고 애를 쓰고 있는데 잘 찾아지지가 않는군요. 아니면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을 내가 찾고 있는 걸 수도 있겠네요.


항상 힘들었고, 올해도 쉽지 않네...


어제 처갓집을 갔다 오는 차 안에서 이런 말을 했지요. 맞다고 웃으며 맞장구치는 당신의 얼굴을 보며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아마 우리는 올해는 조금 더 편안해졌으면...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으면... 하고 바라고, 올해는 불안하지 않고 조금 더 편안해지겠지... 생각했나 봅니다.


생일 때만 당신을 생각하는 것으로 오해할까 이렇게 편지는 쓰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며칠 전 당신이 끄적거린 메모를 발견했네요.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져 편지를 쓰지 않을 수가 없네요.

00이가 아픈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이가 잘 못 클 일은 없다. **이에게 불안을 주지 말자. 나는 아이들에게 더 큰 가능성을 열어 둘 것이다. 나는 내가 생각한 대로 건강하고 크게 성장할 것이다. 행복을 찾지 말고, 느껴라. 사랑한다. ㅁㅁ아~ 언제나... 네가 그렇게 그때 그 마음 잊지 않기를...


난 왜 당신이 내려놓으려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요? 아니, 인정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당신이 이렇게 죽을 것 같이 내려놓으려, 자책하지 않으려, 죄책감에서 벗어나려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난 눈감아 버렸습니다.


나 자신에 대한 후회 그리고 자책이 내 몸을 휘감았습니다. 무언가로 한 대 맞은 것 마냥 충격이 컸네요. 그리고 이런 끄적거림이 당연한 건데 왜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당신의 마음을 알지 못했을까. 자책해 봅니다. 이리도 당신의 마음이 내 마음과 똑같고, 당신도 죽을 만큼 노력하고 있는데 말입니다.


당신 참 고생했다. 힘들지. 괜찮아. 다 괜찮아질 거야.


진심이 아닌 말들만 지금 까지 당신에게 한 것 같네요. 속으로는 나도 힘들어. 너만 힘드냐. 뭐 이리 힘들고 거기에 나까지 힘들게 하냐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일부러 그러진 않았어요. 그런데 자꾸 그런 생각이 나도 모르게 들었나 보네요.


그리고 같잖은 충고와 조언을 일삼았지요. 너무 불안해하지 마라. 그러면 아이가 더 불안해진다. 마음을 편안하게 가져라. 명상을 해봐라. 당신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져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 봐라. 아이를 내려놓고 놓아줘야 한다. 아이에게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도 안 되는 충고나 했습니다.


당신을 힘들게 했던 건 그 누구도 아닌 '나'였네요.


당신을 자기 자신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환경에 억지로 몰아넣고 왜 자기 자신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냐고 당신을 책망했습니다. 가끔은 사람 좋은 말투와 미소로 감추고 당신에게 자기 자신의 시간을 가져보라 이야기했네요. 내가 생각해도 역겨운데 당신은 얼마나 보기 싫었을까요. 얼마나 억울했을까요.


다시 한번 당신이 옳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나와 같은 생각과 감정과 경험을 가진 유일한 내 친구라는 것도 알아챕니다. 날 이해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내 사람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알았네요. 내가 힘들 때 날 안아 주고 위로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란 것도 눈치챘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솔직한 감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사이라는 것도 다시 가슴에 새깁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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