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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실한 베짱이 Nov 15. 2019

특별한 아이를 만난다면...

우리 찐이는 특별하다. 쏘 스페셜하다.

내 아이는 특별하다. 태어났을 때부터 특별했다. 찐이는 태어나면서부터 아팠다. 아니, 태어나기 전부터 아팠다. 태어나기 전 의사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이는 잘 크고 있습니다. 주수에 맞춰서 신장, 체중, 머리둘레 다 좋아요.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네. 그런데 신장이 조금 이상하네요.

네? 무슨 말씀이세요?

신장이 다른 아이들보다 조금 큽니다.

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아직 조치를 취할 정도로 크진 않습니다. 경과 관찰하고 태어난 후에 문제가 있다면, 조치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그게 왜 그런 건가요? 그리고 크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 거예요?

일단 태어난 후 경과 관찰을 해야 합니다. 원인은 아직 찾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태어난 후 해소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단 기다려보죠.

네 알겠습니다.


신장은 키가 아니었다. 腎臟, Kidney 였다. 하늘이 무너질 듯했다. 뭐... 무너지지는 않더라만은,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 말을 정말로 싫어하게 되리라는 걸 그때는 전혀 알 수 없었다.


'원인을 알 수는 없습니다만.'


그날 아내는 말이 없었다. 그렇게 말 많던 아내가, 말이 너무 많아 내 귀에서 피를 흘리게 하는 아내가 말이 없었다.



2013년 5월. 찐이가 태어났다. 손가락이 10개인지 세고, 발가락이 10개 인지 셌다. 모두 었다. 그런데 간호사가 뭔가가 없단다. 재차 물었다. 없단다.


잠복고환이었다. 둘째의 고환이 없었다. 충격이 너무 컸다. 세 번 정도 물어봤던 것 같다. 그러자 누워 있던 아내가 말했다.


무슨 일이야? 왜? 무슨 문제가 있대?

아니야. 손, 발 열 개씩 있는 거 확인했어.

우리 아가 어때? 괜찮지?

그럼 괜찮아. 걱정하지 마. 자 안아봐. 젖도 물려보고.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분만이 어려웠다. 왜 인지 아이가 잘 나오지 않았다. 아내가 많이 힘들었고, 그래서 바로 들통날 거짓말을 했다.



분만을 마치고, 병실로 올라갔다. 어머니, 아버지, 장모님, 장인어른이 있었다. 다들 걱정된 눈빛으로 내 입만 바라보고 있었다.


"산모는 건강하고요. 아이는 잠복고환이 있네요."


모두들 말을 잇지 못했다. 잠시의 침묵을 깨고 어머니가 말했다.


"나 아는 사람도 그런 사람 있더라. 그거 다 수술하면 괜찮다네."


장모님이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맞아. 나 아는 사람도 그런 사람 있더라고요."


아무 일도 아니라는 것을 믿고 싶은 것이었을까. 모두들 이 의견에 동조했다.


시간이 흐른 뒤, 이제 둘째를 볼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얼굴을 보는 순간 조금 이상했다. 위화감이랄까, 여하튼 그런 감정이 조금 들었다. '태어난 직후라서 그런 걸 거야.'라고 마음을 달랬다. 모두들 예쁘다는 말은 연신 해댔다. 그래야만 한다는 듯, 그래야만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는 듯 예쁘다, 귀엽다는 말은 연신 해댔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했다. 첫째와는 뭔가 달랐다. 찐이가 특별하다는 것을 난 몰랐다. 아니 모르는 척했다.



산후조리를 마친 뒤 집으로 돌아왔다. 첫째 때 경험이 있어 더 잘하리란 기대와 조금의 자신감을 가지고 집으로 왔다. 그러나 한 달이 지날 무렵, 난 자신감을 상실했다. 승진 시험이 있어 휴가를 내고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다급한 소리가 들렸다.


"애가 이상해! 빨리 좀 와줘!"


아내의 다급한 목소리에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아이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응급실로 달려갔다. 청색증이란다. 응급실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호흡이 곤란했던 거고, 일단은 이상이 없으니 또 그런 일이 있으면 바로 응급실로 오라고 했다. 그렇게 일단락되는 듯했다.


돌 무렵까지 아이를 키우는데, 아이가 잘 크지 않았다. 그리고 모든 것이 느렸다. 목을 가누는 것도 늦고, 뒤집는 것도 늦는다. 젖을 빨지도 못하고, 젖병을 빨지도 못한다. 숟가락으로 젖을 떠먹여 보지만 역부족이다. 첫째는 이미 했던 걸 다 하지 못한다.


(소아 청소년 표준 성장도표)

아이를 키워본 사람들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이게 무엇인지. 우리 아이의 신장, 체중, 머리둘레가 어느 정도인지 파악할 수 있는 표준표이다. 작은 순서대로 줄을 세운 표로, 1번이라면 너무 작고, 100번이라면 너무 큰 거다. 뭐... 그래도 그 안에 들어 있다면 그 나이의 표준이라는 소리이니 크게 걱정할 건 없다. 대부분 10번만 되어도 걱정이 돼서 안절부절 못하지만 우리 둘째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다. 1번보다 작았다. 표준 성장 도표 내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병원에서는 '연골무형성증'이 의심된다고 했다.


응? 연골무형성증!


아...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내 인생 최고의 패닉이 왔다. 어떻게 해야 할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심장이 뛰어 터져 버릴 것 만 같았고, 머리는 작동하지 않았다. 뇌의 주름이 다림질한 것처럼 쫘악 펴진 것만 같았다.


거리에 왜소증을 가진 분들이 많이 보였다. 그 전에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아니 봤을 것이다. 그러나 그냥 지나쳤겠지. 둘째가 왜소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머리에 들어왔다. 세상이 완전히 다른 관점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생각해 볼 필요가 없었던 그 사람의 심정이, 그 가족들의 마음이 보였다. 내가 지금껏 가지고 있었던 나와 세상의 경계가 조금씩 겹쳐지고 흐려져 갔다.


유전자 검사를 했고, 연골무형성증은 아니라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성장, 발달장애가 있을 거라고 했다. 충격을 받았지만 사실 장애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때는 체감하지 못했다. 병원을 나오며 나와 아내는 울지 않았다. 모든 걸 받아들여서가 아니었다. 우리의 마음이 단단해서가 아니었다. 장애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장애아의 부모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가슴으로, 피부로, 현실로 느끼지 못해서였다.


힘내고 앞으로 잘 이겨나가자.
다 잘 될 거야.


당연하고, 들어도 힘나지 않는 그런 말을 서로에게 던지며 병원을 나왔다.


날씨는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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