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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멈가 Jan 23. 2024

공감도 지능이라면, 나는 저능아로 남고 싶다.


심리학에서는 공감도 지능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난 약간 덜떨어진 사람일지도 모른다. 남들보다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오래전부터 느껴왔다. 사실 공감이라는 단어에 ‘능력’을 붙이는 것조차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무슨 능력이란 말인가. 그냥 감성적인 사람이 타인에게 감정이입 좀 하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인간미가 부족하긴 하다. 나를 속속들이 아는 한 대학 동기는 나를 로봇 같다고 했다. 물론 원만한 사회생활을 위해 어느 정도의 리액션은 장착했다. 적절하게 위로하거나 걱정하고 때로는 공감해 준다. 다만, 그 일이 내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그 모든 행위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렇게 사람들과 감정을 섞는 척이라도 하는 날엔 혼자 충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공감은 내게 쉽지 않다.



그런데 어제는 달랐다. 동료가 급히 반차를 썼다. 어머니가 수술한다고 했다. 평소라면 ‘그래요? 얼른 가봐요.’하고 말았을 텐데, 어제만큼은 어머니가 얼마나, 어떻게 안 좋으신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 일임에도 나는 동료와 그의 어머니를 진심으로 걱정했다.



내가 타인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 아픔을 겪어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가족의 아픔을 겪어보니까 이제는 그 마음을 안다. 그래서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미처 알지 못했다. 내가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다는 사실을. 풍파를 겪어본 적이 없어, 다른 사람의 너덜너덜해진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할머니 얘기만 나오면 눈물을 흘리는 후배가 있었다. 그저 감성적인 녀석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어떤 사연이 있었나 보다. 그렇다면 공감은 다양한 경험을 통해 학습된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같은 처지의 타인을 공감할 수 있다면, 그건 분명 능력이고 지능이 맞다.



그런데,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그렇게 아픈 경험을 통해 배운 감정을 지능이라 한다면, 나는 저능아로 남고 싶다. 지능이 떨어져도 상관없다. 이기적이고 로봇 같아도 좋으니 아픔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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