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장님
팀장님이 그동안 누구에게도 한 적 없는 얘기라며 내게 과거 이야기를 해주셨다. 죄송하지만, 이미 세 번째 듣는 얘기였다. 그래도 나는 처음 듣는 얘기인 양 집중해서 들었다. 무려 40분 동안.
우리 팀장님은 알면 알수록 특이하다. 첫 만남부터 심상치 않았다. 3년 전 입사 첫날, 팀장님은 나와 입사 동기들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사자처럼, 절벽에서 떨어뜨려 살아남는 사람만 키워요.”
신입 사원에게 하는 첫 마디가 저런 거라니. 이것이 사회의 냉혹함이구나 생각했다.
다행히 정말로 절벽에서 떨어뜨리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떨어뜨리기는커녕, 잘 올라갈 수 있도록 사다리까지 놔주는 사람이었다.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냉혹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그는 팀장이라는 위치가 무색하게 매일 우리에게 하소연을 한다. 끊임없이 임원들에 대한 불만을 늘어놓는다. 처음엔 듣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익숙해졌다. 다만, 그런 모습을 보고 팀장치고 참 카리스마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 그에게 반전 매력이 있었다. 어느 날 타 부서 직원이 우리 연구부 직원들의 옷차림이 너무 가볍다며 문제 삼자, 팀장님은 말했다. ‘어떤 부서보다도 일 잘한다. 연구원이 연구 잘하면 됐지 왜 옷 가지고 뭐라 하냐.’ 처음으로 팀장님에게 카리스마를 느낄 수 있었다.
함께 당직을 서던 날, 팀장님은 내게 조심스럽게 화요일에 퇴근하고 시간 괜찮냐고 물으셨다. 무슨 할 얘기가 있으신가 했는데, 그냥 치맥하고 싶다고 하셨다. 부하 직원에게 치맥 하자는 얘기조차 이토록 조심스러운 시대가 된 것이다. 또래 직원이 많아 늘 즐겁게 일하는 우리와 달리 팀장님은 조금 쓸쓸해 보인다. 화요일에 우리는 격식을 조금이나마 내려놓고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었다.
집에 가기 전, 팀장님은 꽤 인상적인 말씀을 하셨다. 지금처럼 묵묵히 일하되, 때를 기다리며 야성을 갈고 있으라고. 그 말이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야성을 갈아라… 꽤 멋진 말이잖아?’ 징징이 같으면서도 제법 멋진 말을 하고, 소심해서 팀원들에겐 쓴소리도 제대로 못 하면서 윗사람에겐 종종 반기를 든다. 하여간 특이한 사람이다.
내가 ‘야성’에 꽂힌 것처럼, 팀장님은 ‘사자와 절벽’에 꽂히셨나 보다. 지금까지도 그 얘기를 자주 하시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다.
팀장님, 사자가 사는 초원에는 절벽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