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는 고양이를 요물이라고 했다. 요물이란 요망하고 간사하다는 뜻이다. 고양이와 함께 사는 입장에서, 그 말이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인지 모르겠다. 단언컨대 고양이는 털만 빼면 정말 완벽한 반려동물이다. 오죽하면 신이 털 빠지는 단점 빼고 모든 것을 다 주었다는 말이 나왔을까.
‘천사가 따로 있나? 이 녀석이 천사지.’
우리 폴라를 보고 있으면 이러한 생각이 절로 든다. 가만히 눈을 마주치고 있으면 눈을 살포시 감았다 뜨며 애정을 표현한다. 쓰다듬으면 그르렁 소리로 만족감을 나타낸다. 고양이가 냉정한 동물이니 뭐니 하는 말은 모두 이런 그들의 언어를 몰라서 나온 게 분명하다. 한 번이라도 고양이와 동고동락해 본 사람이라면 안다. 강아지와 표현 방식이 다를 뿐, 우리를 무척 사랑한다는 사실을.
우리 폴라 자랑을 조금 하자면, 폴라는 웬만한 강아지보다 말을 잘 듣는다. 한창 호기심 많은 새끼 때(그때는 엄마가 아끼는 화초를 다 뜯어놔 함께 좇겨날 뻔했다)를 제외하고는 생전 사고 한 번 치지 않는다. 특히 훈련도 꽤 잘 받는데, 손은 기본이고 이제는 하이파이브와 하우스(은신처로 들어감)도 할 줄 안다. 비록 손에 간식이 쥐어져 있을 때뿐이지만, 그래도 기특하다.
아, 최근엔 옹알이가 늘었다. 자취방에서 나와 둘이 살 땐 과묵한 고양이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내와 살림을 합친 후 폴라가 달라졌다. 둘이 맨날 대화하더니 요즘은 아주 수다쟁이가 됐다. 주거니 받거니 하며 울어댄다. 신기한 건, 내겐 여전히 과묵하게 군다는 점이다. 아마도 울음에 매번 반응하는 아내에게만 그러는 듯하다.
우리 폴라는 아무리 졸려도 출근할 때마다 현관까지 나와 배웅을 해준다. 그러다가도 신발을 신으면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잔다. 이왕 해주는 거 끝까지 해주던가. 매번 똑같은 패턴이다. 자기도 나름의 규칙이 있나 보다.
이렇게 사랑스러우니 털이 아무리 빠져도 용서된다. 털쯤이야 내가 청소기 한 번 더 돌리면 그만이다. 이 말랑말랑한 감정을 얻는 대가로 그 정도도 못 해줄까. 내가 털만 빼면 완벽한 동물이라고 했던가? 정정한다. 고양이는 털 빠짐마저도 사랑스러운, 그저 완벽한 반려동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