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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멈가 Apr 12. 2024

아메리카노 같은 순수함을 유지할 수 없다면



출근길에 편의점에서 커피 한 잔을 샀다. 옷을 갈아입으려고 잠시 장 위에 두었다. 그런데 이 채광, 쓸데없이 감성적이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사진을 한 장 찍었다.



문득 처음 카페 알바를 하던 대학생 때가 떠올랐다. 지금이야 커피 없이는 하루도 버틸 수 없는 몸이 되어버렸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커피 좋아하세요?”


면접 중에 사장님이 물었다.



“아니요.”


당황하는 사장님의 표정에 아차 싶었지만, 사실이었다. 그때까지도 나는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도대체 그때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면접에서 그리 단호하게 말했을까?



그날 오후 카페에서 전화가 왔다. 기대는 하지도 않았다. 어떤 바보 같은 사장이 커피 싫어하는 알바생을 뽑을까?



“OO 씨, 우리 같이 일 해봐요.”


그 바보 같은 사장님이 여기 계셨네. 사장님은 또 무슨 생각으로 나를 채용했을까?



사장님은 커피를 싫어하는 사람을, 커피를 좋아하게끔 만들며 희열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알바를 시작하고 매일 커피를 마셔야 했다. 적어도 내가 내린 커피가 어떤 줄은 알고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아메리카노는 무리였다. 마실 수록 인상이 써지는 게, 사람들은 왜 이걸 돈 주고 사 먹나 싶었다. 그나마 초코 시럽이 들어간 카페모카는 먹을 만했다.



그렇게 모카를 시작으로 점차 커피 맛에 익숙해졌다. 알바를 시작한 지 일 년쯤 됐을 땐, 라떼와 카푸치노까지 섭렵했다. 점차 커피를 즐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럽이 들어간 커피는 금방 질리기 마련이다. 커피 맛에 꽤 익숙해진 나는 결국 아메리카노까지 손을 대기 시작했다. 이렇게 말하니 무슨 코카인이라도 한 것 같은데, 지금 커피 없이는 못 사는 걸 보면 커피도 마약이 맞다.



아무튼 다른 메뉴와 달리, 아메리카노는 그저 깔끔해서 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원액인 에스프레소를 제외하면, 아메리카노는 가장 순수한 커피이다. 오직 커피와 물로만 만들어졌다. 물 대신 우유를 넣으면 라떼가 되고, 거기에 시나몬 파우더를 얹으면 카푸치노가 된다. 혹은 시럽을 추가하면 모카나 캬라멜 마끼아또가 된다.



어쩌면 사장님은 프렌차이즈 카페 경력이 없던 내게서 아메리카노 같은 매력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직 어떠한 시럽이나 재료도 들어가지 않아서 입맛에 맞게 제조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안타깝게도 지금은 많은 것이 바뀌었다. 살다 보니 이런저런 첨가물이 들어갔고, 더 이상 아메리카노라고 말할 수 없게 되었다. 쉽게 말해 때가 탔다. 속세를 살면서 아메리카노 같은 순수함을 유지하는 건 쉽지 않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랫동안 사랑받는 커피가 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아무 시럽이나 짜 넣어선 안 되겠다.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섞일수록 본래의 매력을 잃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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