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상 고충이라고 하면, 어둡고 좁은 연구실 환경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철저히 세포를 배양하는 데 맞춰진 환경이라 그렇다. 처음 입사했을 땐 앞으로 여기에서 어떻게 일할까 싶었다. 그곳에서 한참 동안 현미경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마치 작은 우주에 갇힌 듯한 느낌이다.
어느 날 팀장님이 내게, 쉬는 날에 등산을 가든, 어디든 가서 넓은 걸 보고 오라고 조언해 주셨다. 그렇지 않으면 사람이 점점 좀팽이처럼 된다나? 그땐 와닿지 않았는데 이젠 알 것도 같다. 폐쇄적인 공간에서 마이크로 단위를 다루는 업무는 그야말로 숨이 막힌다. 종종 트인 곳으로 나가주지 않으면 마음이 무척 갑갑하다.
사실 내게 등산은 유산소와 근력 운동을 같이 챙길 수 있는 하나의 스포츠였다. 목표는 오직 정상이었고, 정상을 찍으면 미련 없이 하산했다. 스포츠로서의 등산도 나쁘지 않지만, 이제는 그 목적이 바뀌었다. 더 이상 도전이 아니라 지친 마음을 치유하기 위해 산에 오른다.
높은 산에 올라 서울 시내를 내려다보면 여러 생각이 스친다. 가장 먼저, 저 많은 건물 중 내 것은 없다는 사실에 새삼 억울해진다. 그리고 이내, 별것도 아닌 일로 아등바등 사는 것이, '삶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맞구나 싶다.
난간에 기대어 잠깐 생각에 잠겼을 뿐인데 해가 조금 이동한 느낌이 들었다. 다시 또 내려갈 생각에 조금 암담했지만 어쩌겠는가, 내려갈 수밖에. 이제는 등산보다 인생살이가 더 스포츠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등산의 목적도 바뀌었고, 삶의 목적도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