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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 그래야 상처받지 않는다. 나는 그 적당한 거리감을 갑옷이라고 표현한다. 타인의 영향을 덜 받아,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부터 나를 지켜주기 때문이다. 나는 매일 아침 그 갑옷을 입고 출근한다.
그런데 때로는 이런 내 신념이 몇몇 동료들에 의해 흔들린다. 그들은 ‘특별한 무기’로 나의 갑옷을 너무도 쉽게 무력화한다. 아무리 마음을 닫고 두꺼운 벽을 쌓아도, '이것'으로 무장한 이들에겐 그저 무용지물이 된다. 그 무기란 바로 ‘상냥함’이다.
상냥한 사람은 강하다. 초년생 시절엔, 화가 많은 사람이 센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사수를 가장 무서워했다. 그녀는 일이 맘처럼 풀리지 않으면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이제는 내가 그 나이가 되어보니 알겠다. 그녀는 여렸다. 그렇게 화를 내고 나면, 정작 본인이 가장 힘들어했다.
화를 내는 건 오히려 쉽다. 애초에 마음의 벽을 쌓는 것도 최선은 아니다. 전자는 감정을 그대로 쏟아낼 뿐이고, 후자는 회피에 가깝다. 정말 어려운 것은, 이 차디찬 사회에서 그 온기를 잃지 않는 상냥함이다. 그래서 상냥한 사람이야말로 강하다.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주인공 팀의 아버지는 주례에서 이런 명언을 남긴다.
‘결혼하는 사람에게 나는 항상 한 가지만 충고해 줍니다. 끝엔 우리 모두 다 비슷하다는 것. 모두 늙고 같은 얘기를 수십 번씩 반복하니까요. 하지만, 상냥한 마음을 가진 사람과 결혼하라는 것.’
내가 갖지 못한 그 상냥함이 좋다. 다가올 초개인화 시대에 상냥함은 가장 귀한 덕목이 될 것이다. 내 한 몸 건사하기 힘든 현실에서, 그들은 기어이 타인의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공감한다. 나는 그 부드러운 강함을 동경한다. 그런 이들과 함께 일할 수 있어 영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