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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의 숙명, 다시 달리기, 탄산수

by 멈가

남자의 숙명은 가혹하다.

20대라는 유예 기간이 끝나면 배가 나오고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한다. 나이에도 칼로리가 있는지 먹으면 먹을수록 살이 찐다. 우리 집안엔 딱히 대머리도, 비만도 없는데 어째서인지 내 이마 라인은 깊어져 간다. 게다가 조금만 방심해도 배가 나오니, 남자의 숙명이자 테스토스테론의 저주라고 할 수 있다. 안 그래도 별로였던 외모가 더 볼품 없어지는 기분이라 속상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인가 싶기도 하다. 10대, 20대는 그야말로 잘생긴 친구들의 무대였다. 공부 못해도, 일을 못 해도 멋진 외모가 면죄부가 되어 주었다. 그랬던 녀석들도 30대 중반이 되니, 한두 명씩 탈모가 진행되거나 살이 찐다. 게다가 잘 씻지 않으면 몸에서 아재 냄새까지 나니, 이제 외모라는 버프는 사라지고 능력으로 정정당당히 승부 보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아마 40대가 되면 더욱 그럴 것이다.

오늘 걷지 않으면 내일은 뛰어야 한다.


몸무게가 마지노선에 다다랐다. 몇 해 전, 큰맘 먹고 산 오어슬로우 퍼티그 팬츠가 끼기 시작했다. 처음 샀을 때만 해도 허리가 커서 사이즈 조절용 단추를 조여놓고 입던 바지이다. 이젠 단추를 풀어도 간당간당하다. 이미 바지 몇 벌을 못 입게 되어 옷장 속에 고이 모시는 신세가 되었다. 오어슬로우 만큼은 잃을 수 없다. 그래, 한동안 잘 먹었으니 다시 뛸 시간이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러닝머신에 오른다.

운동을 할 때 가장 어려운 건, 바로 헬스장에 가는 일이다. 특히 퇴근 후 지친 몸으로 가는 건 더더욱 힘들다. 막상 시작하면 할 만하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매일 나 자신과 피 말리는 협상이 열린다.

'오늘만 쉴까?'

'그러기엔 점심을 많이 먹었는데.'

'하루 더 뛴다고 살이 빠지는 것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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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통제력이 높진 않지만 적어도 이제 한 가지는 안다. 자신과의 협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애초에 협상을 시작하지 않는 것이다. 갈지 말지 고민하기 전에 문밖을 나서야 한다. 일명 ‘생각하기 전에 움직여 버리기’. 그렇게 일단 문밖을 나오면 그다음부턴 몸이 자동으로 움직인다.

탄산수는 생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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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엔 탄산음료를 딱히 찾지 않는데, 다이어트만 시작하면 콜라가 그렇게 당긴다. 하지만 콜라만큼 다이어트에 최악인 게 또 있을까? 절대로 참아야 한다. 원래 다이어트가 참기 싸움이다.

하지만 너무 혹독한 다이어트는 지속하기 힘들다. 무조건 참는 것보단 건강한 식품으로 대체하는 것도 요령이다. 다이어트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이제 다이어트에 돌입할 때면 쿠팡에서 탄산수 20개 들이를 사서 쟁여놓는다. 콜라가 생각날 때마다 탄산수를 마신다.

내게 탄산수는 코코넛 열매 같다. 트럭에서 파는 코코넛을 처음 먹었을 때 실망했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무인도 체험하는 연예인이 야자열매를 얼마나 맛있게 먹던가. 시원하고 달짝지근한 맛을 상상하며 한 모금 빨았는데 맛이 예상과는 많이 달랐다. 시원하지도 않을뿐더러 별맛도 없었다. 탄산수를 처음 먹었을 때도 딱 그랬다. 물도 아니고 사이다도 아닌 것이 밍밍했다. 이걸 만든 사람도, 사서 마시는 사람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르다. 10km를 뛰고 나서 탄산수를 들이켜면, 희대의 발명이란 생각이 절로 든다. 0칼로리에 이런 청량함이라니? 아마 코코넛도 무인도에서 탈수 직전에 마셨더라면 분명 달랐을 테다. 아무튼 탄산수나 코코넛이나 누군가에겐 생명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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