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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냉면과 압구정의 낯빛들

by 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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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이프는 평양냉면 마니아다. 특히 압구정에 좋아하는 평양냉면 집이 있어 종종 방문한다. 그 슴슴한 걸 먹으러 멀리까지 왜 가나 싶지만 어쩔 수 없다. 그 또한 남편의 역할이다. 게다가 가끔 그마저도 함께 해주지 않으면 별안간 내게 화가 닥쳐올 수도 있기 때문에, 못 이기는 척 한 번씩 가는 것이다. 그런 일이 아니면 압구정에 갈 일은 거의 없다. 평생 서울에 살았지만 와이프를 만나기 전까지 나는 압구정에 가본 적이 없었다. 적어도 기억엔 없다.



무슨 이유에서든, 압구정을 거닐 때면 나는 미묘한 느낌을 받는다. 익숙한 감정은 아니라서 한 마디로 정의하긴 어렵다. 일종의 자격지심 비슷한 감정이다. 압구정 사람들의 낯빛은 분명 우리 동네 주민들과는 다르다. 그들은 미소가 환하고 자연스럽다. 걸음에 여유가 있고, 특히 노인들은 화려한 옷을 입지 않아도 곱다. 무엇보다 얼굴에 심술이 없다. 처음엔 부자 동네라는 이미지 때문에 드는 착각으로 여겼다. 그런데 냉면을 기다리던 와이프가 말했다. 사람들이 얼굴에 그늘이 없다고. 그녀도 매번 느꼈던 것이다.



식당에서 그들의 대화를 엿듣다 보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 보니 자격지심 같은 게 아니라 자격지심 그 자체였다. 티는 안 내도 기분이 조금 다운된다. 나도 저렇게 근심과 심술 없는 얼굴로 늙고 싶다.



오랜만에 데이트 나와서 궁상만 떨고 있을 순 없다. 마무리는 언제나 비슷하다. 우리도 언젠간 저렇게 살자! 그때쯤이면 평양냉면이 나온다. 국물을 한 모금 마시고 식초와 겨자를 얼마나 넣을지 계산하다 보면 그늘은 금세 사라진다. 이 사람들이 맨날 이렇게 맛있는 걸 먹어서 신수가 훤한 건가? 와이프를 따라 먹다 보니 어느샌가 평양 냉면을 좋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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