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정자와 난자를 수정시키고 배아를 만든다. 그 배아를 최대 7일까지 키워 원래의 주인에게 돌려준다. 혹은 동결시킨 후 다음에 돌려주기도 한다.
‘임신’
우리의 목표는 참으로 심플하다. 심플하지만 여전히 낯설다. 세포 분열이라든지, 정자 경쟁이라든지 하는 것들을 교과서로 얼마나 공부했던가? 이론적으로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는 그 현상들도 실제로 목격하면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매번 놀랍다.
정자라는 존재가 밝혀진 지 350년도 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정액 안에 작은 아기가 들어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여성의 몸 안에 들어가 커져 나오는 것이라고. 지금이야 우습지만 당시엔 가장 설득력 있는 주장이었을 것이다.
정자는 세포이다. 아무리 올챙이처럼 생겼다고 해도 하나의 세포일 뿐이다. 그런데 난자와 한곳에 두면 건강한 정자는 언제나 난자를 찾아간다. 이는 정자가 가진 몇 가지 성질 때문이다.
점액의 흐름을 거슬러 운동하는 주류성,
물질 주위로 이동하는 주촉성,
특정 전극에 반응하는 주전성
특정 화학 자극에 반응하는 주화성.
모두 난자를 타켓팅한다.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정자는 눈이 없으면서도 난자를 향해 질주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정말 궁금한 것은 보다 본질적인 데 있다.
‘도대체 그 성질들을 어떻게 갖게 되었는가?’
난자는 정자를 끌어들이는 성질을 갖고, 정자는 그에 끌리는 성질을 갖는다. 마치 정교하게 설계된 듯하다. 물론 이런 의문 대부분은 '진화'로 설명되곤 한다. 까마득히 오랜 세월에 걸쳐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진화하며 갖게 된 성질. 그 한마디면 생물학의 대부분 이론을 뒷받침할 수 있다.
내 사유는 그리 깊지 않아서, 언제나 이쯤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의문을 접어둔다. 그러고는 다시 일에 집중한다. 찜찜한 구석이 남지만 눈앞의 업무가 더 급한 법이다.
이제 우리는 호르몬을 조절해 더 많은 난자를 얻어 내고, 더욱 정교하게 수정시킨다. 이제 난임 부부의 절반 가까이는 시험관 아기 시술을 통해 임신이 가능해졌다.
그런데 시간이 더 흐르면 어떨까? 더욱 진보된 지식과 기술을 갖추게 된다면, 미래인들은 지금의 수정 기술을 보고 무식하게 난자에 바늘을 찔렀다며 경악할지도 모른다. 나는 지금 우리의 기술이 우습게 될 그날을 고대한다.
임신이라는 자연스럽고도 흔한 현상 뒤, 그 메커니즘은 알면 알수록 복잡하다. 목표가 단순하다고 그 과정까지 단순하진 않다. 복잡한 기작을 단순하게 보여주려는 많은 연구자의 노력이 있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