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똑똑한 친구가 하나 있다. 그의 언변과 재치 그리고 세상 보는 눈으로 판단컨대, 나와는 비교도 안 되는 명석한 두뇌를 가진 게 분명했다. 당장은 동등한 위치에 있지만 언제 성공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그런 친구였다.
그런데 이상했다. 수년이 지나고, 십수 년이 지나도 그는 늘 제자리였다. 종종 내게 어떤 선언을 하곤 했는데, 한 번도 그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다. 거기에는 언제나 여러 이유가 따라왔다. 하나 같이 맞는 말이라 나는 구태여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우둔했던 사람도 조금은 발전하기 마련이다. 나역시 세상 보는 눈이 조금은 밝아졌고, 그 친구가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나의 착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저 냉소적인 사람이었다.
얼핏 보기에 냉소적인 사람은 보통 사람이나 긍정적인 사람에 비해 똑똑해 보인다. 그들은 줄곧 옳은 말만 하므로, 논쟁에서 이기기 어렵다. 설령 논리로 이긴다 해도 그 고집은 절대 꺾지 못한다.
그들은 도통 '쓸데없는'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삶에 큰 변화도 없다. 애초에 가능성 적은 일에는 도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날카롭고 분석적인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 '옳은 말'이다. A를 제시하면 이래서 안 되고, B를 제시하면 저래서 안 된다. 언제나 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수십 가지는 있다. 그러니 알고 보면 성과를 내지 못하는 게 아니라 성과를 내기 위해 행동조차 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무용한 것'을 꾸준히 할 때 비로소 성장한다. 영어 단어 한두 개쯤 외워 봤자 아무 소용 없지만, 단어장 한 권을 통째로 외워버리면 상황은 변한다. 마찬가지로 러닝을 잘하기 위해선 매일 쌓는 러닝 마일리지가 중요하다. 하루에 5km 뛰어봤자 아무것도 바뀌지 않지만, 한 달에 150km를 뛰면 얘기가 다르다. 그 단계에서 그런 걸 뭐하러 하냐는 주변 소음은 신경 쓸 필요 없다. 세상은 옳은 말 하는 사람이 아니라 행동하는 사람이 바꾼다. 그러니 묵묵히 쌓아 가자. 무용한 걸 쌓으면 반드시 유용한 무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