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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서 기록

일이 힘들 때, 나는 달리기를 생각한다

by 멈가



전역한 지 10년이 되었을 무렵에, 살 찐 몸이 싫어 달리기를 시작했다. 군인 시절을 생각하며 3km를 뛰었는데 당연하게도 기록이 현역 때만 못 했다. 군인 친구에게 3km 잘 뛰는 방법을 물었다. 그랬더니 5km를 연습하란다. 그럼 3km는 쉬워진다고. 무슨 힘 빠지는 소린가 싶다가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맞는 말이었다. 그때부터 5km를 연습했다.



5km가 어느정도 익숙해지자 다시 기록이 신경쓰였다. 같은 원리로 거리를 조금 더 늘려 8km를 연습했다. 그런데 2km만 더 뛰면 10km 대회에 참가할 수 있다고 한다. 그때부터 10km를 뛰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10km를 뛸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장담컨대 그건 현역 때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제 10km를 꽤 자연스럽게 뛸 수 있게 되었다. 다시 기록이 신경 쓰인다. 10km를 잘 뛰는 방법은 역시 15km를 뛰는 수밖에 없다. 아직 내게는 미지의 영역이지만, 어쩌면 마라토너들은 이런 식으로, 얼떨결에 풀코스를 뛰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일이 힘들 때 나는 달리기를 생각한다. 그리고 달리기가 힘들 땐 일 생각을 한다. 전혀 다르게 보이는 두 일이 알고 보면 비슷하다. 일이든 달리기든, 역량이란 게 정확히 같은 원리로 성장하기 때문이다. 스트레스받을 바엔 차라리 생각을 내려놓는다. 생각 없이 뛰다 보면 목표 거리에 도달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마음을 내려놓고 일하다 보면 어느샌가 일은 끝나고, 딱 그만큼 역량이 성장한다.



글 쓰는 일만큼이나 달리기에 진심인 무라카미 하루키. 그가 미리 정한 묘비명은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다. 그도 달리기하며 일을 생각했나 보다. 어째서인지 단순한 그 문장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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