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할 때, 마지막 1~2km 정도는 꼭 페이스를 올린다. 그러면 한동안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몸에 열기는 그보다도 오래 남는다. 곧바로 샤워하면 금세 다시 땀이 나는 바람에 한참을 앉아서 휴식 한 뒤, 호흡과 체온이 돌아오면 그제야 샤워한다. 찬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식혀주면 비로소 운동이 끝나는 것이다.
바로 그때이다. 글쓰기에 가장 좋은 순간 말이다. 온몸의 에너지를 쫙 빼줬기 때문일까, 산만함과 잡념은 사라지고, 이전보다 훨씬 차분한 상태가 된다. 오직 은은한 음악과 조명 그리고 나만이 이 세상에 남은 듯하다. 지금이 딱 그 순간이다.
내겐 글을 써야 할 이유가 없다. '작가니까 쓰는 게 아니라 쓰니까 작가'라고 배웠지만, 아무래도 글로 돈 한 푼 벌지 않는 작가를 어디 작가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안 쓰면 생활이 어려워지는 것도 아니니, 아무튼 써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도 매번 시간을 내어 키보드를 두드리는 건, 그냥 좋아서이다.
도무지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는 사람도 많다. 그에 비하면 이런 순간을 만끽할 수 있는 나는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는 일,
안 해도 사는데 지장이 전혀 없는 일,
못 해도 혼나지 않는 일,
그런데 꾸준히 하다 보면 발전을 기대해 볼 수도 있는 일.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시되는 현대에서 우리에겐 이런 것들이 필요하다. 그냥 하는 것 자체로 좋다면 더 이상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써야 할 이유는 없지만, 안 쓸 이유도 없다. 그래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