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록을 읽다가
로마 제국의 제 16대 황제이자, 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전쟁터에서 글을 썼다. 그의 글은 후대 그리스 철학자들에 의해 편찬됐다. 무려 2,000년 동안 인류에게 지혜를 준 『명상록』이다. 『명상록』 제 1장은 그가 받은 가르침에 관한 내용이다. 누구에게 무엇을 배웠는지 써 내려갔다. 비록 황제는 아니지만 내게도 은인이 많아, 읽던 중 쓰기를 참을 수 없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자애로움이 무엇인지, 성실함과 책임감이 무엇인지 보았다. 나는 심성이 호전적이고 이기적이었으나 어머니의 한결같은 사랑으로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았고, 사람들과 제법 어울릴 수 있도록 자랐다. 아버지가 무심코 사다 주신 책은 매번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집트에 대한 동경, 호주로 떠날 용기, 그리고 그곳에서 시작한 글쓰기는 지금도 나를 바꾸고 있다. 무엇보다 부모님은 언제나 내게 선택할 자유를 주셔서 나는 하고 싶은 일들을 할 수 있었다. 그 덕분에 나는 삶을 직접 만들어간다는 만족감을 느끼며, 그 누구도 책망하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부모님으로부터 성실함이 무엇인지 보았다면, 팀장님으로부터는 성실함이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지를 보았다. 그는 15년 이상 남들보다 한 시간 일찍 출근해, 때로는 공부했고 때로는 일했다. 나는 살면서 그토록 한결같은 사람을 보지 못했다. 내 생각에 그는 천재와는 거리가 멀지만, 특유의 우직함과 성실함으로 그 자리에 오른 듯하다. 그는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늘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듣고 적극 수용했다.
동기 K로부터는 유머가 무엇인지, 자신감이 사람을 얼마나 돋보이게 하는지, 문제를 맞닥트렸을 때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보았다. 그와 말을 섞으면 자연스레 빠져들곤 한다. 특히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고, 당당하며 차분하게 돌파해 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런 유머와 자신감의 힘을 깨닫는 한편, 나는 절대 그처럼은 될 수 없다는 약간의 좌절감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이건 열등감과는 다르다. 그는 내게 좋은 자극제이고, 그처럼 되기보다는 그가 할 수 없는 부분을 계발하려고 노력했다.
내 아내로부터는 가식 없는 인간관계에 대해 배웠다. 그녀는 감정 표현이 솔직해서, 좋아하는 사람을 보면 반가움을 온몸을 표현할 줄 안다. 나는 표현이 서툴고 마음의 벽이 두꺼워 다른 사람에게 쉽게 마음을 주지 못하는데, 그녀의 솔직함 앞에서는 언제나 무장해제 되고 말았다. 그렇게 그녀에게서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의 절친한 친구 H로부터 행복이란 무엇인지 보았다. 그는 행복을 타고난 듯하다. 같은 환경에 있어도 나는 고통을 찾았고, 그는 행복을 찾았다. 그는 언제나 가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가진 것에 비해 겸손하다. 그래서인지 얼굴에는 탐욕이 일절 없다. 훤칠한 외모와 순수한 성격으로 누구라도 그에게 호감을 느낄 수밖에 없으며, 그 또한 주변 사람과 허물없이 지내니 인간관계에 한 점의 오점이 없다. 그는 나의 좋은 친구이자 경쟁자로서, 나는 한 번도 그에게 패배한 적이 없으나, 승리한 적 또한 없다. 승패와 관계없이 그는 항상 행복했고 딱히 이기는 것에 목매지 않았다. 나는 그로부터 진정한 승리란 무엇인지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