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멈가 Aug 06. 2023

원룸이 쓰리룸보다 좋은 점


 3년 전, 통근이 힘들어 신림에 5평 원룸을 얻었다. 누군가는 이런 데서 어떻게 사냐고 할 만큼 협소했지만, 미니멀 리스트에 가까운 내겐 그럭저럭 지낼 만했다. 전세 계약이 끝날 무렵, 와이프와 살림을 합치기로 하면서 원룸 생활은 이제 추억이 되었다.


 

"출세했네~ 원룸에 살다 쓰리룸 가니까 어때?"


 동료들이 이사를 축하해 주었다. 그 당시에는 드디어 원룸을 벗어난다는 생각에 좋았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넓은 집도 아니지만, 4.5평 원룸에 살던 내겐 새집이 대궐 같았다. 그런데 이사 온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의외로 원룸이 그리울 때가 있다. 원룸이 쓰리룸보다 좋은 점은 무엇이고, 어떤 것이 그리운 걸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늑함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중요한 사람이라면 아늑한 느낌을 좋아할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꼽으라 한다면, 나는 주저없이 ‘혼자 있는 시간’을 선택할 것이다. 지금도 혼자 있을 때는 많지만 그때의 아늑함과는 깊이가 다르다.

 

 둘째, 실내 온도 조절에 용이하다는 점이다. 이건 집마다 차이가 있지만, 공간 특성상 원룸이 온도 조절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에어컨을 잠시만 틀어도 금방 시원해진다. 반대로, 겨울에는 방이 늘 따뜻했다. 거실 에어컨을 틀어도 방까지 잘 전달되지 않아 더울 때면, 에어컨 바람을 직빵으로 받던 원룸이 생각난다.


 

 세 번째는 이동 동선이다. 출근 준비를 위해 원룸에선 딱히 동선이라고 할 것도 없었다. 굳이 이동이라 한다면 화장실 갈 때 정도랄까. 어디든 다섯 걸음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쓰리룸으로 오니 그 동선이 상당하다. 방에서 나와 화장실에서 씻고, 방으로 돌아와 머리를 말리고 다시 거실을 지나 드레스룸으로 가서 옷을 입는다. 그러다 보니 준비시간이 훨씬 길어졌다. 또, 자다가 목이라도 마르면 냉장고가 멀어 귀찮다. 그 자리에 상만 놓으며 주방이, 노트북을 올리면 사무실, 그리고 책을 펼치면 도서관이 되는 것은 원룸의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삶의 질에 있어서 원룸에 사는 것이 더 좋을 리 없다. 그런데도 자주 생각나는 것은, 그 시절 나의 소중한 안식처였기 때문인 듯하다. 온종일 긴장한 채 하루를 보내고, 작은 방에 돌아오면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나의 초년생 시절을 품어준 그 공간이 그리운 것이다.






 불과 1, 2년 전의 일을 가지고 '그 시절'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다. 그렇지만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변했다. 동반자가 생겼고, 회사 생활은 꽤 안정을 찾았다. 그리고 내 배는 더 나와버렸다 (이것만큼은 변하지 않았으면 했는데 어쩔 수 없는 수컷의 천명인가보다). 그 시절이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하지 않다. 앞으로 시간은 더 빨리 가고, 우리의 첫 보금자리인 지금 이 공간도 훗날엔 몹시 그리워지리라 생각한다. 불평하며 흘려보내기엔 너무 소중한 시간이다.


 여담이지만 요즘같이 비가 많이 오거나 폭염 날씨에는, 원룸이든 쓰리룸이든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감사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콤플렉스가 무기가 된 순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