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멈가 Aug 11. 2023

ISTJ지만,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끼고 싶어서



 한마디로 말하면, 나는 ISTJ의 정석이다. 이는 MBTI 성향 테스트의 한 가지 유형으로, 논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이미지가 강하다. 이 테스트를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지만, 많은 이들이 공감하며 유행이 되었다.


 아무튼 나는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타인의 불행에도 그다지 마음 쓰지 않는다. 자랑이 아니란 걸 알지만, 아마도 공감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가 싶다. 하지만 이런 내게도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은 있다.


 따뜻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던 시기가 있었다. 남을 돕기에는 내 생활도 빠듯했던 대학원생 시절, 문득 마음이 너무 차가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난생처음으로, 아무런 대가 없이 좋은 일을 해보기로 했다.


‘안 해봐서 그렇지, 나도 좋은 일을 하면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낄 수 있을 거야.’


 지금 생각해 보니 그 생각 자체가 이미 이타심은 아니었다. 내 기분을 위한 봉사활동이니 말이다.


 그렇게 시작한 첫 봉사활동은 차상위계층 가구의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었다. 적어도 원래의 역할은 그랬다. 하지만 실제로는 분해된 펜을 다시 조립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아이들은 끊임없이 내 필기구를 분해하거나 숨겨댔다. 그 모습이 귀엽기는 했으나, 상상과는 많이 다른 그림이었다.


 기대했던 보람은 거의 느끼지 못했다. 마음이 따듯해지지도 않았다. 매주 목요일 나가던 봉사활동은 점차 그 주기가 길어졌고, 결국 3달을 채우고는 그만두었다.


이 일로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째, 좋은 일을 한다고 해서 모든 사람이 몽글몽글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둘째,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다.


 그렇게 별 감흥이 없었던 나의 첫 봉사활동은 잊혀 갔다. 더는 억지로 좋은 일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나답게 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 그놈의 몽글몽글한 감정을 의외로 가까운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서 청소해주시는 여사님을 아주쳤다. 나는 인사치레로 점심은 드셨냐고 물어봤는데, 토요일에는 일이 많아 점심을 먹을 수 없다고 하셨다. 말을 하는 중에도 숨을 헐떡이고 땀이 흥건했다. 그 모습이 힘들게 일하는 우리 엄마와 겹쳐 보였다.


 온갖 간식에 커피까지 마시며 일한 것이 괜히 죄송스러웠다. 아니, 그 쓰레기들을 모두 여사님이 치워주신다는 걸 생각해 보면 괜히가 아니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나는, 내게 할당된 도시락을 여사님께 드렸다. 정말 고맙다며 웃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을 넘어, 꿀렁꿀렁해졌다.


 ’어쩌면 나는 차가운 게 아닐지도 몰라’


 봉사활동 할 당시를 회상하니, 아이들에게 친근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된다. 그땐 나 자신도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던 것 같다. 지금 다시 만난다면, 그때보다 잘해줄 수 있을 텐데.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회사에서는 연구부와 진료부에는 토요일에 도시락을 제공하지만, 여사님들께는 주지 않는다고 한다. 하여간 빌어먹을 회사 놈들.


매거진의 이전글 당신은 초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