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기록_29살
내가 꼭 고치고 싶은 나의 성격은 미리 걱정하는 성격이다.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것을 누리면 되는데, 자꾸 미래를 걱정한다. 순례길에서는 그래도 그런 성격이 많이 누그러졌다. 매일같이 목표한 거리가 있고 그 거리를 걷는 게 유일한 미래였기 때문이다. 그때의 단순한 하루하루처럼 일상도 살아갈 수 있으면 좋을 텐데... 그게 잘 안된다.
DAY2. 포르투마린 -----> 필라스데이
충분한 휴식 후 바를 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내 앞으로 내 또래의 여자아이가 걷고 있는 게 보였다. 바에서 살짝 외로움을 느껴서인지 대화가 너무 하고 싶어 용기를 내어 바로 말을 걸었다.
그 아이는 태국인으로 친구와 순례길을 걸으러 왔지만 속도가 달라 따로 걷고 있다고 했다. 내 부족한 영어실력 때문에 말이 잘 안 통하 긴 했지만 친절하게도 천천히 의사소통을 해줬기에 나름 즐겁게 대화하며 걸었다. 그 아이가 내게 "왜 걸으러 왔니? 한국인들은 다 스페인 하숙 보고 왔던데 너도 그러니?"라고 물었다. 당시 스페인 하숙이 방영 중이었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그 방송을 보고 순례길을 걸었다고 한다. 나는 그 방송이 아닌 그저 도시 여행보다 색다른 거 없을까 해서 찾아보다가 알게 되어 걷게 되었지만 말이다.
나는 짧은 영어로 "재미있어 보여서!"라고 답했다. 태국 아이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정말이다.(이 날 내 컨디션이 정말 안좋아 힘든게 육안으로 보일정도여서 의아해했던것 같다.) 실제로도 새로운 경험의 연속인 순례길 위에서의 모든 일이 재미있어서 행복했다.
태국 아이와 헤어지고 열심히 걸어 목표했던 필라스데이에 도착하기 직전부터 배낭의 무게가 점점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밑 빠지는 느낌을 처음 느꼈다. 거기에 허리, 다리, 무릎 통증이 더해져 한 발 한 발 걷는 게 고통이다. 마을 초입에서는 정말 포기하기 직전이었다. 숙소에 도착해서도 온몸이 너무 아파 오늘 봤던 모든 아름다운 풍경의 감동들이 끝나는 느낌이었다. 체력에 대한 준비 없이 걸으면 힘들다는 걸 절감한 날이었다.
"내일은 동키 서비스를 무조건 이용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