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느린 기록_29살
길고 긴 코로나의 시대는 2년이 훨씬 넘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나는 무기력하다. 그 무기력함에 눌려 호기롭게 시작했던 브런치를 200일 가까이 방치해버렸다.
그런데 봄이다. 내 기분과 상관없이 봄은 왔다. 이미 와버린 시작의 계절, 이제는 나도 내 기분을 털어내고 봄을 맞이해보려 한다. 다시 한번 가장 행복했던 2019년의 늦봄, 그때의 기록을 다시 이어 본다.
DAY2. 포르투마린 -----> 필라스데이
순례길 2일 차, 오늘은 필라스데이라는 마을을 목표로 걷는다.
해가 뜨기 전, 어두운 숲길을 홀로 걸으며 둘째 날 일정이 시작되었다. 아침을 깨우는 새소리와 새벽 향을 잔뜩 품은 풀내음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고요하지 않았지만 고요한 기분이었다. 혼자 와서 다행이라고 이 날 처음 생각했다.
숲길을 벗어나자 도로가 보였다. 이날의 여정은 생각보다 도로 길이 많아 전날과는 다른 풍경이 색달랐다.
한참 혼자 길을 걷다 한국인 아저씨가 말을 걸어 함께 대화하면 걷기 시작했다. 이 아저씨와는 여정 마지막까지 인연이 이어지는데 연락처는커녕 성함도 모른다. 한국에 와 한번 만날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때는 재취업에 치여 거절한 게 아직도 아쉽다.
아저씨는 고2 아들을 두신 직장인 남성분으로 휴가를 내고 레온부터 걷기 시작하셨다고 했다. 레온부터 걷는 여정은 약 2주 코스이다. 내가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 중 나 다음으로 짧게 걷는 순례객이었다.
길 위에서의 이야기, 퇴사한 회사 이야기 등 다양한 이야기를 하며 한 시간 정도 걷다가 아침을 안 먹으신 아저씨는 식사를 위해 바로 들어가셨고, 나는 그냥 계속 걸었다. 그런데 웬걸 말도 안 되는 경사면의 오르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등에 있는 짐은 어제보다 무겁게 느껴지고 어제 얻은 근육통의 고통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기에 한숨이 절로 내쉬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