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no 142 : 네가 커서 마음이 아프고 힘들 때 꺼내보렴
그날 캠핑장엔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살짝 황량함마저 돌았다.
딸아이와의 첫 캠핑이었기에 첫 기억이 좋았으면 했던 터라, 열심히 찾아본 캠핑장이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허름한 곳이었다.
착잡한 마음에 딸아이를 돌아보니, 아이는 내내 신이 나있다.
낡아서 부서진 미끄럼틀에서도 신나게 내려오고,
거미줄 쳐진 점핑장 안에서도, "엄마, 여기 엄청 큰 거미줄이다"하며 신기해했다.
그리고, 그날은 날씨까지 도와주지 않았다.
번개가 치고, 빗방울이 거세지고, 심지어는 우박까지 치던날이었다.
서둘러 텐트를 치고 간신히 텐트안으로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모닥불을 켜고 둘러앉았을 때, 딸내미는 비 오는 세상에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가족 모두 돌아가면서 만세를 하며, 소리를 질렀다. 그 모습을 서로 보며 깔깔 웃어댔다.
캠핑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우리의 소리는 빗소리에 묻혀 나무와 숲만이 들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30여분이 지난 후, 신기하기도 갑작스레 비가 멈추고, 햇살이 비치기 시작했다.
주변은 갑자기 초록초록 생기 있어졌고, 풀잎에 맺힌 빗방울에는 세상이 비쳐 보였다.
그날 우리는 최고의 첫 캠핑 여행을 보냈다.
가끔 우리는 아이를 걱정한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주지 못한 거 같아서, 좀 더 좋은 것을 주지 못한 거 같아서.
엄마가 되고서 매번 싫게도 따라오는 그 감정이 죄책감이다. 잘해주지 못해 스스로를 자책하게 되는 마음.
그날도 그랬다. 첫 캠핑인데, 좋은 기억이 아니면 어쩌지 하는 걱정과 염려.
하지만 아이에게는 그날 세상은 호기심 가득한 모험의 세계였고,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즐거운 기억이었을 뿐이다. 좀 더 나은 환경, 좀 더 좋은 조건이라는 건, 그저 어른이 되고서 나도 모르게 세뇌되어버린 그런 기준이었을 뿐, 우리가 처음 세상을 바라보는 기준은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이들은 추억을 먹고 자란다. 그 추억의 기준은 어떤 환경 이냐보다 누구와 함께,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한 것 같다.
때로 그날이 우리에겐 힘들고, 지친 날이었다 기억하더라도, 아이는 나름의 즐거움과 행복을 찾아내는 그런 존재인 듯싶다.
우리가 처음 포근한 엄마 뱃속에서 나와, 이 세상에 던져졌을 때, 씩씩하게 그리고 호기심 어린 눈으로 이 세상을 탐험했던 것처럼.
그리고 그렇게 기억된 날들은 아이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여, 언젠가 아이가 커서, 세상에 지쳐 힘이 들 때
그 차곡차곡 쌓인 추억의 병들을 마음 창고에서 꺼내 이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어 갈 거다.
그 추억 창고에 좀 더 많은 병을 채워주는 게 지금 내가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mumuraey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