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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muraeyo Feb 14. 2023

무무래요 그림과 함께 보내는 2번째 편지

feat. 윤슬X스페이스코르  전시

무무래요 그림과 함께 보내는 다정한 편지

한 주가 또 금세 지나가 버렸어요. 요 며칠은 봄이 살랑살랑 겨울 주위를 서성거리는지 날씨가 푸근하네요. 얼마 전 전시하고 있는 카페를 다녀오느라 서울에 갔다 왔어요. 카페 전시를 손보고 돌아오는 길, 도로 건너편에서 가로수들을 가지치기하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요, 커다란 가지들이 뎅강뎅강 잘려 바닥에 떨어지는 걸 보니 저도 모르게 감정이 이입돼서 나무가 아플것 같았어요. 하지만 이것도 더 잘 자라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겠지요? 


요즘 딸아이의 방학으로 새해가 시작한 지도 1달이 넘었지만 아직 저는 새로운 시작하고는 조금 먼 생활을 하는 있는 것 같아요. 원래 방학이란 게 아이는 신나지만 엄마는 고민이 좀 많아지는 시기거든요. 엄마로서의 시간과 나로서의 시간이 자주 엉키다 보니 답답할 때도 많았지만, 몇 번의 방학을 보내고서는 이 시기는 어쩔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그전까지만 해도 내 뜻대로 안 되는 일정에 조급증이 걸려 힘들었는데 받아들이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생각 하나 바꿨다고 이리 달라지네요. (이 생각 하나 바꾸는게 참 힘들긴 했지만요 ^^;;) 생각을 바꾸기 전에는 일상과 가족을 좀 제쳐두고 제 시간을 먼저 욕심낸 적도 있었어요. 그러다 보니 금세 일상이 망가지더라고요. 어질러진 집안을 보다 보면 제 마음도 머리도 답답해지고 금세 지쳐 버리게 되는, 효율성이 많이 떨어지는 저라서 말이지요. 저는 멀티가 심각하게 안되는 데다, 일상의 균형이 흔들리면 삶 전체에 영향을 쉽게 받는 사람이거든요. 고민과 걱정이 많은 날이면 집 여기저기를 뒤집어 정리하고 나서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사람. 어쩌면 방학이라는 상황을 받아들였다기보다 저 자신을 받아들였다는 말이 맞을거예요. 

그런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딱히 정리 전문가는 아니지만 저만의 정리하는 기준은 생기더라고요. 



정리하려는 공간에서 어떤 느낌을 받고 싶은지 생각해 볼 것.

빽빽이 물건들 사이에도 꼭 숨 쉴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둘 것.

이야기가 묻은 흔적과 물건은 되도록 남겨둘 것.

초록의 식물들을 함께 둘 것.



우리 집 거실에는 다크 그린 컬러의 소파가 있어요. 워낙에 녹색을 좋아하는 저에게 딱 맞춤인 소파였지요. 게다가 크기도 아담해서 넓지 않은 우리 거실에 딱이었거든요. 지난번 편지에도 얘기했듯 우리 집은 칠판 페인트가 칠해진 곳이 많아요. 이 소파가 있는 벽에도 짙은 그린색의 칠판 페인트가 칠해진 공간이지요. 그곳에는 3단의 좁은 선반을 달아 두었어요. 소파에 등을 기댔을 때 걸리적거리지 않아야 해서 아주 좁은 선반이에요. 제일 아래 단과 가운데 단 사이 간격은 큰 판형의 그림책을 놓을 수 있을 만큼 간격이 넓고, 위로 올라 갈수록 좁아진 간격의 선반이 필요해서 남편과 직접 나무를 주문해 오일을 칠해서 만든 선반이에요. 저희 집에서는 가끔 작은 가구들을 만들어요. 딱 우리에게 맞춤인 상태인 물건은 역시나 직접 만드는 수밖에 없더라고요. 그 덕에 우리 집에서는 가끔 톱밥이 온 집안을 뒤덮곤 하지요 ^^


이 좁은 선반에는 꽤 많은 물건들이 놓여 있어요. 그중 몇 개를 소개하자면 아이와 어릴 적 만들었던 손바닥만 한 미니 그림책을 모아둔 미니 도서관, 캠핑 갈 때 주워온 돌멩이들을 모아둔 작은 수납장, 이젠 제법 길게 자란 아이비, 그리고 좋아하는 그림책을 때마다 바꾸어 전시해 두곤 해요. 그림책 표지가 예뻐서, 혹은 다시 읽고 싶은 그림책을 한 권씩 놓아두곤 하는데, 그림책에 관심 없는 남편도 가끔씩 들춰 보더라고요.


illust by mumuraeyo


그림에서는 아이비가 빠져있고, 그림에서 어울리는 배색을 위해 칠판 페인트 벽대신 쉘핑크 컬러를 썼지요. 

가끔 저 소파에서 담요를 덮고 누워서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곤 해요. 눈을 감고 햇볕을 쐬기도 하고요. 

어때요? 그림 속에 제가 좀 보이나요?



아마도 당신에게도 당신이 있는 공간을 정리하는 나름의 규칙이 있겠지요? 혹시 아직 그런 규칙이 없다면 한번 정리해 봐도 좋을 거예요. 얼마 안 남은 2월은 나만의 규칙을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요? 규칙을 정했다고 규칙에 얽매일 필요는 없어요. 규칙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저 규칙을 정하는 동안 나의 취향을 발견하게 되고, 저만의 기준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면 내가 있는 공간에 놓을 물건을 고를 때도 좀 덜 고민하게 되고요. 가끔은 내가 편하기 위해 있는 나의 집인데 물건들의 집이 되거나, 내 집이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하잖아요. 


저는 당분간 조금 천천히의 시간으로 일상을 가지치기하듯 정리하는 시간을 보낼 것 같네요. 당신에게도 차분하게 정리되는 남은 2월이 되길 바랄게요. 


그럼 다음에 또 편지할게요 :)


-- 2023년, 더 다정해지고 싶은 무무래요가. 




무무래요의 그림을 직접 보고 싶다면 스페이스 코르에서 2월 한 달간 만날 수 있어요~ ^^



<전시 안내>

전시 기간 : 2023년 2월 1일 ~ 2월 28일 한 달간

관람 시간 : 카페 영업시간 내 (평일 09~00~19:00 / 주말 12:00~19:00)

전시 장소 : 카페 스페이스 코르 (서울 종로구 대학로 19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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