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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umuraeyo Oct 18. 2020

초보초등엄마증후군

구입한지 3년쯤 된 내 핸드폰은 완충을 해도, 좀 오래 외출을 하려면 꼭 보조 배터리를 챙겨야 했다. 요금제도 가장 라이트하게 줄이다 보니 가끔 다운로드가 안되거나 버퍼링이 걸리는 것쯤은 감수하며 산다. 그래서 어디를 가든 와이파이 표시를 먼저 찾는 부지런함을 떨게 된다. 오늘 육아 이야기는 이런 나의 오래된 핸드폰과 닮은 나의 초등 엄마 적응기 때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사실 지금도 초등 엄마이긴 하지만 그때는 좀 더 초보 초등 엄마의 시기였다고나 할까? ^^) 



2019년 딸아이는 초등학생이 되었다. 그리고 당연히 나도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었다. 처음으로 초등학생 학부모가 되는 경험은 참 생경했다. 아이에게도 많은 변화가 찾아오지만, 내게도 만만찮은 혹은 그보다 더 많은 변화가 찾아오는 시기이기 때문일 거다. 이제는 2학기도 거의 끝나가고, 최대 난제(?)인 겨울 방학 미션만을 남긴 터라 제법 적응이 되었지만, 학기 초의 나는, 내 오래된 핸드폰이 된 듯했다. 



어린이집 때와는 달리, 준비해야 할 것도, 알아야 할 것도 몇 배는 많은 1학기 초기. 날마다 날아오는 학교 통신문에, 학부모 총회, 반 모임, 학부모 상담, 학교 봉사 활동, 방과 후 활동 등 처음 학부모가 된 나는 매일 새로운 미션을 부여받는 느낌이었다. (코로나인 요즘에는 대부분 온라인 모임으로 바뀌었을 테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 시절 절실했던 게 바로 엄마 네트워크였다. 요즘 아이들의 친구 만들기는 옛날처럼 동네에서 아이들끼리 친해지는 게 아니라, 엄마들끼리도 서로 친분이 있어야 서로 편하게 왕래가 되는 환경이다 보니, 이전에도 엄마 네트워크는 중요한 능력이었지만, 초등학교에 들어가면 둘째 이상인 엄마들의 경험이나, 나처럼 초보 초등 엄마들의 연대가 더 절실해진다. 그래서 그때는 늘 와이파이를 찾아 헤매는 내 핸드폰처럼, 엄마 네트워크에 끼기 위해 사교적이지도 않은 내 성격에 참 많은 노력을 했었다. 



그렇게 엄마도 바쁜 나날이지만, 아이에게도 이전의 어린이집에서의 세계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계가 만들어진다. 학교라는 환경에 처음엔 불안해하기도 하고, 어느 날은 언제 불안했냐는 듯 금세 그 세계에 적응하기도 한다. 그리고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면서 키우는 강아지 얘기도 하고, 친구들 얘기도 한다. 그러다 보면 필수 불가결로 비교를 하게 되는 시기가 오는 듯하다. 뭘 해도 제일이라는 엄마 아빠의 칭찬을 철석같이 믿었던 7살 인생에서, 초등학생 때는 친구들과 자기를 비교하기도 하고, 그래서 가끔은 풀이 죽거나 의기소침해진다. 부모가 아무리 잘한다 얘기해도 더 이상 무조건적인 칭찬은 약빨(?)이 안 든 달까? 칭찬을 하더라도 좀 더 그럴듯한 논리적 근거가 있어야 납득을 했다. 그래서 그 시기에 나는 딸아이에게 말하면서 가끔 오래된 내 핸드폰마냥 버퍼링이 오는 순간들을 겪곤 했다. 



아이의 감정과 자존감도 챙기고, 나름의 논리가 있는 그럴듯한 말을 해주려 하다 보니, 가끔 머릿속이 엉켜버렸다. 이쯤 보면 알겠지만 나는 노련한 사람이 아니다. 좀 느리기도 하고, 40이 넘어도 여전히 사람 관계는 어렵다는 생각을 하는 그런 류의 사람이다 보니, 더 많은 버퍼링이 걸렸던 듯하다. 그래서 '엄마의 말공부'라는 책을 찾아 읽어보기도 했다. (엄마는 정말 계속 공부하고 생각해야 하는 영역인 듯 ^^)  그러다 어느 날 눈에 띈 인스타그램의 피드 하나. 아이가 창문을 그리고 크레용으로 색을 채우는데, 이리저리 삐져나와서 속상해하니까, “엄마는 너무 예뻐 보이는데~ 창문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것 같아서 더 멋진걸!” 하고 얘기해 줬다는 내용. 나라면 어떻게 얘기해 줬을까? “괜찮아, 삐져나와도 괜찮아” 그 정도의 얘기 밖에 생각이 안 났을 것 같다. 그 피드를 보면서 나도 이렇게 얘길 해줘야지 마음은 먹었지만, 뭐 그런 능력이 마음먹는다고 한 번에 생기겠는가? 그 뒤로도 여전히 나는 버퍼링의 순간을 계속 겪지만, 그냥 내 솔직한 마음을 최대한 쉽게 표현해 보려고 노력한다. 엄마의 진심이 아이에게 전해지길 바라면서.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리고 초등학생 엄마가 된다는 건 그렇게 내 능력 밖의 일도 해내야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 시기 나는 내내 방전된 핸드폰처럼 지치곤 했다. 아닌 척했지만 가끔은 아이에게도 그 피곤함을 들키면서 머쓱해지기도 했다. 여전히 초등학생 엄마는 내게 참 힘들지만, 이제 3년이 다 되어가니 제법 요령도 생기도, 보람도 찾게 된다. 내년 4학년이 되면 저학년 때랑은 또 다른 새로운 미션에 당황할 테지만, 한해 한 해를 지나면서 초보초등엄마증후군을 잘 이겨낸 나는 그때도 잘 해낼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그리고 고작 나도 이제 엄마(된) 나이 10살밖에 안된 초등생이란 걸 인정하면,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지지 않을까 싶다. ^^ ⓒ mumuraeyo

illust by mumurae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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