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산타할아버지 언제 와?”
“아빠, 산타할아버지 언제 와?”
“음… 오늘 밤에 수호가 잠들면 오실걸?”
“왜 잠들면 오셔?”
“그건 수호가 안 자고 깨어 있으면
다음 날 너무 피곤할까 봐
일찍 자라고 배려해 주시는 거야.”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아이는 매일같이 산타할아버지를 기다렸다.
사실은 산타보다도
평소 가지고 싶었던 선물을 기다리는 걸지도 모르지만.
작년 크리스마스까지는
말 안 듣고 울고 떼쓰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안 주신다고 말하곤 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읽은 동화책 속에서
산타할아버지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미 모두 착하고,
슬프거나 아프면 울기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선물을 주신다고.
그 문장을 읽고 난 뒤
올해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선물을 무조건 받을 수 있다고
수호는 굳게 믿고 있는 것 같았다.
드디어 크리스마스 아침.
수호는 잠에서 깨자마자
거실에 놓인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보고
큰 소리로 환호했다.
“우와! 선물이다!
너무 신난다!”
아이의 기쁨에
우리 부부도 잠시
동심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리고 아내가
어젯밤 AI로 합성해 만든 영상을 보여줬다.
자는 수호 옆에서
산타할아버지가 살포시 이불을 덮어주는 장면이었다.
수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영상 속 산타할아버지에게서
한참 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요즘 SNS에는
AI로 산타할아버지가 집에 들어오거나
선물을 두고 가는 영상을 만드는 법이
쉽게 올라온다.
아내도 좋은 아이디어라 생각해
그 영상을 만든 것이다.
그런데 나는
조금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꼰대가 되어 생각해 보면,
라떼는 TV나 사진 속 산타할아버지의 이미지는 있었지만
자는 동안 머리맡에 선물을 두고 가신
산타할아버지의 모습은
오롯이 상상 속에만 존재했다.
나는 그 상상으로
나만의 산타할아버지를 만들었고,
그 모습은 어른이 된 지금까지도
오랫동안 가슴에 남아 있다.
아이가 좋아한다면
뭐, 상관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상상하고, 그려보고, 기다려보는 과정이
하나둘 생략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이 글이 올라갈 즈음엔
이미 크리스마스가 지나버렸겠지만,
모두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그리고 해피 뉴 이어.
이렇게 나는 또,
아빠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