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기 많이 아파?”
“우리 아기 많이 아파?”
“응...”
요즘 우리 아이는 청개구리 모드다.
묻는 말엔 꼭 반대로 대답한다.
소리 지르며 신나게 뛰어놀고 있을 때
“재미있어?” 하고 물으면,
“아니, 재미없어~” 하며 도망간다.
그런 아이가 열이 나고 기침을 하면서,
“아파?”라는 물음에 힘없이 “응...”이라고 대답했다는 건,
“아빠, 이번엔 진짜야.”라는 뜻이다.
아이가 아플 때마다 내 마음도 함께 무너진다.
이마에 손을 얹어 체온을 재보고,
해열제를 먹이며 밤새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아이의 뜨거운 체온은 금세 내 마음을 달구고,
그 작고 여린 숨결은 내 어깨를 더 무겁게 누른다.
우리 부부는 맞벌이다.
아이가 아프면 둘 중 하나는 회사 눈치를 보며 휴가를 내지만,
정작 집에 있어도 편하지가 않다.
전화벨은 계속 울리고,
메신저 창에는 문의 글이 쉼 없이 올라온다.
몸은 아이 곁에 있어도 마음 한편은 늘 회사로 끌려간다.
두 갈래 길 위에 서 있는 기분이다.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잔병치레가 잦았다.
그 시절 아내는 회사 일과 육아를 동시에 짊어졌고,
나는 “영업직이라 야근이 많아서…”라는 말로 빠져나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못난 핑계일 뿐이었다.
미안함이 쌓이고 쌓여, 결국 나는 육아휴직을 결심했다.
경력의 공백이 두렵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그보다 더 큰 것은 우리 아이의 건강이었다.
아이에게는 아빠가 필요했고, 아내에게는 남편이 필요했다.
시간은 흘러 다시 복직했지만,
아이가 아플 때마다 그때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책상 앞에 앉아 있어도 머릿속은 아이의 기침 소리로 가득하다.
거래처와 통화하다가도,
순간순간 체온계를 붙잡던 기억이 겹쳐진다.
회사와 아이 사이, 보고서와 체온계 사이에서
여전히 흔들리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는 이내 흔들리는 내가
참 부끄러워 또다시 마음이 무너진다.
하지만 곧 알게 된다.
새벽녘,
가쁜 숨결이 잦아들고
고요가 방 안에 내려앉을 때,
아빠라는 이름은
이렇게 긴 밤을 지나
조금씩 빛을 얻어간다는 것을.
이렇게 나는 또, 아빠가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