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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나 Aug 31. 2020

가을 향기가 훅 끼치는 아침에

기후

홍차와 가을


아침에 눈을 뜨고 찻주전자에 물을 끓였다. 작고 투명한 티팟에 '야생홍차' 찻잎을 덜고, 물을 부었다. 그리고 내 방 책상에 앉아 찻잎이 우려지는 동안 가만히 창밖을 바라봤다. 가을하늘의 색감이 보였다. 짙은 파랑. 그리고 엷게 물결치듯 깔려있는 구름. 바람이 불자 가을만이 내뿜을 수 있는 달고 고소한 향기가 코끝으로 훅 들어왔다. 내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아, 드디어 가장 사랑하는 계절이 왔구나. 가을이었다.


가을에는 설렘이 있다. 기나긴 무덥고 습했던 여름을 겨우 보내고 마치 선물처럼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청량한 시원함. 아무도 모르는 새에 매미의 울음소리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높고 짙은 푸른색이 천연덕스럽게 채우는 시기. 거리는 소담스러워지고 집들은 차분해진다. 모든 것들이 마음에 여유를 찾고, 일 년 중 두번째 시작을 맞이하듯 내면에 새로운 다짐들로 가득해진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행복이 차오르고, 내쉬는 숨마다 가을과 한 몸이 된다. 적당한 습도와 온도와 바람으로 가슴 안에 에너지가 가득 차오르고, 어디든 떠나고 싶은 날이 된다.



내가 가을을 사랑하는 이유


나는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기분이 끝없이 가라앉을 때라도 적당한 온도, 습도, 바람만 있다면 한없이 행복해지고 치솟아오르다못해 우주 끝까지 올라간다. 그렇다고 날씨가 별로라고 해서 기분이 안 좋은 것은 아니다. 그저 어떠한 요소들의 집합이 순간적으로 나를 행복하게 할 때가 있다. 그런 날에는 향기마저 특별하다. 세상이 살아 숨쉬는 듯한 향기. 바람결에 실려 전해지는 내음에는 생명력이 충만하여 눈을 감고 그것을 음미한다.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온몸이 그 순간의 하늘처럼 새파래지는 느낌. 몸이 둥둥 떠오르고 어디론가 흘러가는 상상. 우주를 유영하는 것만 같고 우리 모두는 결국엔 자연과 하나라는 생각. 자연과 함께 호흡을 하고  있는 느낌.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현재의 감각에 집중하게 된다. 살갗에서 느껴지는 기온, 두 뺨을 스치는 바람의 부드러운 감각, 냄새, 소리, 시야를 가득 채우는 푸르름, 이 모든 것들을 느끼며 끝없는 무한함과 살아있음을 느낀다. 두려울 것도, 걱정할 것도 없다. 그 순간만큼의 나는 뭐든 잘 해낼 것을 알기에.


그래서 가을을 사랑한다. 가을은 그 자체로서 나를 살게 해주고 행복을 안겨주고 설렘을 불어넣는다. 깊게 숨을 마실 때마다 폐 속 가득 채워지는 가을 속에서 전율을 느낀다. 가장 짧은 탓에 애틋함도 크다. 대신 나머지 계절에서 가을의 모습을 찾는다. 봄에는 비슷한 기온을 통해, 여름에는 여름밤의 청량함 속에서, 겨울에는 차분하고 깊은 분위기 속에서. 나는 일 년 내내 가을을 그리워한다. 물론, 그렇다고 나머지 계절에 무덤덤하지는 않다. 각 계절마다 나름의 매력들이 있어서 또 세상은 살만하다.



조용한 9월


9월을 하루 앞둔 월요일이다. 이번 가을에는 많이 돌아다니고 싶었는데, 코로나시대라 조금 힘들게 되었지. 어쩔 수가 있나. 그냥 지금처럼 책상에 앉아 창문을 열고 차 한잔 하면서 가을 날씨를 힘껏 느끼는 수밖에.


아, 그리운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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