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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나 Sep 03. 2020

듀나, <아직은 신이 아니야>

매일 밤 잠들기 전에 책을 읽어야지. 그 책은 반드시 소설책이어야 해, 라고 다짐하고 꺼내든 것은 듀나 작가의 <아직은 신이 아니야>. 밤마다 한  챕터 혹은 두 챕터 씩 읽어나갔고 오늘 아침에서야 끝이 났다. 소중히 읽던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을 때면 늘 느끼던 어떤 아쉬움과 아련함을 음미하며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직은 신이 아니야>



초능력이 도래한 세계


핵심 소재는 초능력이었다.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도 몰랐던 초능력이 숨겨져 있었는데, 이것을 증폭시키는 '배터리' 같은 능력을 가진 이들의 등장으로 사람들에게 내재된 능력들이 점점 터져나온다. 초능력 시대의 초창기 인간들은 이 능력을 얻기 위해 애쓰고, 키우기 위해 애쓴다. 더 성능이 좋은 '배터리' 인간들을 발굴하려 하고 기업에서는 이들을 에너지원으로서 적극적으로 이용한다. 처음엔 초능력의 시대가 마냥 좋아보였을 수도 있다. 각자 타고난 능력도 달라서, 누군가는 사람들의 정신을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는 정신감응력이 있는가 하면, 누군가는 염력을 부릴 수 있는 염동력, 또 누군가는 세포 하나하나를 조절할 수 있는 치유능력, 그리고 이 모든 이들에게 꼭 필요한 존재인 에너지원의 역할을 하는 '배터리', 이러한 특징을 중심으로 사람들은 세분화되었다. 더이상 과학이 필요없었고, 배터리와 성능 좋은 기술을 보유한 사람만 있으면 모든 것들이 가능했다.


하지만 이는 인류에게 새로운 전쟁과 혼돈을 가져다줬다. 능력에 과부하가 걸린 사람들은 통제가 불가능했고 자폭하기도 했다. 비범한 능력치를 갖고 있는 배터리들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해 역시 파국을 맞는 사람도 수도 없었다. 기업들은 초능력 세상에서 더욱 막강한 권력을 쥐고 싶어했고, 인간들은 자신의 능력에 따라 더 상위 계급들에게 철저히 이용되었다. 정신감응자들이 한 무리의 인간들에게 환상을 심어주고, 염동력자들이 기계를 조정하고, 배터리들은 그들의 에너지원이 되고, 환상에 빠진 인간들은 기업의 주인이 원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인간은 언제나 예측불가능하며 변수가 넘친다. 지구는 점점 파멸로 향했다. 예측불가능한 산발적인 죽음들이 늘어나고, 사실 이 시대에서는 살인이라는 행위조차 심각한 사안이 아니었다. 대의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합리적인 것. 죽음은 어느새 익숙한 것이 되어있었다. 대화가 없어도 상대방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대이기도 했다. 한 부족은 정반대의 믿음을 가진 이웃부족의 속마음이 들리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이웃을 몰살시켰다. 배터리는 점점 그 화력을 높여갔고, 과부화되는 지구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람들은 우주로 떠났다. 살기에 적합한 행성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영토를 넓혔다. 결국 지구는 파괴되고 이제 인간의 새로운 터전이 된 행성들은 인간이 발명한, 인간의 지능을 가지고 있는 새로운 종족, '오릴리언스' 들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 후,


비현실적인 초능력의 등장으로 과학이 죽었고,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맞이했다. 그로 인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전쟁들이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였고 사람들은 세상을 통제하기가 힘들어졌다. 이를 제어하려면 과학이 필요했고, 결국 과학은 사람들을 우주로 보냈다. 새로운 터전을 찾아낸 것이다. 모든 사회 현상에는 패턴이 있다. 새로운 것의 등장, 적응 기간, 차지하기 위한 분쟁, 승리, 희생, 부작용, 좀더 편리한 사회로의 발전. 아마도 우주의 행성에 터를 잡은 인류에게도 또 가까운 미래에 이와 같은 패턴이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은 언제나 유약하고 충동적이며 이기적이고 성장하기 위해 애쓴다. 이 본질이 세계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만든다. 어쩌면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 '오릴리언스'들이 점점 우주를 장악해나갈 수도 있고, 결국엔 우주 전체에 인간의 흔적조차 없어질지도 모른다. 인간의 능력을 복사해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종족, 즉, 쓸데없는 감정에 얽매이지 않고 충동적이지도 않고 두려움도 무모함도 없는 그들이 최후의 승자가 될 수도 있겠다.


제목은 아직은 신이 아니야, 라고 했다. 오히려 그들은 점점 더 뒤로 가는 듯하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우주를 장악할 정도겠지만 생각과 사고방식, 그리고 감정들은 점점 더 퇴보한다. 이전에는 상대방의 속마음을 얻기 위해 또는 새로운 정보를 알기 위해 생각하고 찾아보고 연구하고 판단했다면, 지금은 아무 노력없이 모든 게 열람이 가능하니까. 내 감정을 숨길 필요도 없으니까. 어쩌면 이들은 인간에서 오히려 로봇과도 같은 존재로 퇴보하는 것이 아닐까.


어찌됐든, 한 권의 책을 끝냈다. 읽으면서 중간중간 해리포터 생각이 났다. 문체나 대화흐름이나 사소한 상황적인 것들에서 해리포터가 떠올랐다. 듀나는 아마 해리포터의 광팬이었을지도 모르지. 알 수 없다.



이제 또 무슨 책을 읽어야 하나, 새로운 책을 골라볼 생각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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