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DAY 1
자전거
아침이면 누구나 최대한 이불 속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다. 특히 해야할 일도, 약속도 없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늦잠의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다. 그러니 일어나려면 그나마 무언가 하고 싶은 게 나를 기다리고 있어야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 8시 혹은 7시반 기상을 목표로 세우고, 이를 지키기 위해 아침마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대기시켜놨다. 그 중 하나가 얼마 전까지는 따뜻한 찻잎 우려 마시며 브런치에 글 쓰기였다면, 날씨가 좋아진 요즘엔 자전거로 대상을 바꿨다. 덕분에 나는 아침에 꿈에서 깨자마자 시원한 온도를 체감하고, 곧바로 자전거를 떠올린다. 간단하게 세수를 하고 이를 닦은 뒤 옷을 주섬주섬 입고 멍하니 해독주스를 한 잔 마신다. 약 5분 뒤, 자전거를 끌고 아파트 입구에 나와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가을아침의 상쾌한 바람을 느끼며 자전거 안장에 몸을 싣는다.
공원에서 사진 찍기
처음에는 오랜만에 타 본 자전거가 낯설었다. 안전하게 타자는 마음으로 근처 공원을 목적지로 정했다. 자유공원에 도착. 파란 하늘과 풍성한 나뭇잎들이 예뻐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자전거를 타는 내 모습이 근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얼마 전에 구매한 애플워치3의 카메라 기능을 활용하여 내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냈다. 풍경이 좋아서 꽤 마음에 드는 사진 여러 장 건졌다. 신난다. 집에 가서 편집해야지 흐흐!
마스크 내리고 가을도 들이마셔보고
그리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발 가는대로 달렸다. 평소에 걸어서 가던 길들을 자전거를 타고 거슬러갔다. 시간이 오래 걸려서 힘들게 걷던 곳들이었는데, 별거 아니었다는듯이 페달을 밟아 지나쳐가는 기분이 좋았다. 땀이 나려다가도 내 얼굴로 부딪히는 바람 덕분에 계속해서 쾌적함을 유지했다. 사람이 없는 거리에서는 마스크를 조금 내리기도 했다. 가을 향기가 달았다. 서늘한 아침 바람이 마냥 좋았다. 호흡을 깊게, 들숨날숨을 깊게, 후루룩 마시고 후우우욱 내쉬었다. 아, 좋다. 자전거를 타면 좋은 점.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것.
그렇게 첫 날, 한 시간 반정도 타니 어느새 집에 도착해있었다.
DAY 2
학의천
이 날은 한번 평소 수업하는 피트니스센터까지 자전거로 이동해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총 두 길이 있었는데, 처음 선택한 길은,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너무 많아서 탈락. 두번째 길이 원만하니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근처에 있는 학의천을 지나가는데, 자전거도로 위로 라이딩하는 사람들이 여럿 보였다. 좋아보인다! 나도 후다닥 내려가서 입성. 옆에는 냇물이 졸졸 흐르고 있었다. 오전 9시 정도되는 시간대였는데도, 운동하러 나온 사람들이 꽤 보인다. 나이와 성별 상관없이 다들 걷기와 달리기라는 움직임에 집중한 채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 좋았다.
속도를 높이면 허벅지가 아프기 때문에, 나는 조금 천천히 달리는 것을 선호한다. 주변의 경관도 구경하면서 여유를 가지고 산책하는 기분으로 페달을 밟는 게 좋다. 내 뒤에서 빠르게 달려온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내 옆을 지나쳐서 앞으로 달려나가는 모습을 기분 좋게 바라봤다.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사람들이 내 왼쪽 옆을 하나 둘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그 중에는 동호회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아빠와 아들로 보이는 가족과 연인, 혹은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 노인 등 다양한 이들이 보였다.
가을 공기가 좋았다. 옆에서 물이 흐르는 소리도 끊이질 않았다. 풀벌레들이 아직도 울고 있었다. 핸드폰을 꺼내서 키스 자렛의 쾰른 앨범을 틀었다. 볼륨을 최대치로 높이고 그곳에 피아노 소리를 녹여냈다. 이렇게 내 삶을 온전히 살아낼 수 있다는 것, 진정한 평온이 아닐까 싶다. 주체적이고 여유로운 삶이다. 각자 원하는 삶의 방식이 다 다르겠지만, 나는 나에게 맞는, 그리고 내가 가장 원하는 삶의 형태를 점점 찾아가고 있다. 지금은 그 길의 시작, 그리고 가장 중요할 기반을 단단히 다지고 있는 단계이다. 행복하다.
그렇게 한참을 달리다가 문득 위치가 궁금해졌다. 내가 자전거로 어디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 거의 백운호수 근처에 다다라있었다. 와, 다음 번엔, 그러니까, 코로나가 어느 정도 물러나고 나면,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백운호수로 와서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한 잔 마셔야지. 그 날이 기다려진다.
오랜만에 들른, 카페에서 크림이 들어간 콜드브루를
빗방울이 조금씩 들다가, 그치기를 반복. 돌아오는 길은 내리막이라 두배 가까이 빠르게 걸렸던 것 같다. 집 가는 길에 카페 한 곳을 들르고 싶어졌다. 작년에 발레를 배우러 다닐 때, 발레 후에 항상 들려 마시던 내 단골카페. 사실 단골이라 하기엔 그렇게 많이 마신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참 좋아하는 곳이다. 따뜻한 사장님과 포근한 인테리어, 그리고 무엇보다 맛있는 크림이 들어간 콜드브루. 오랜만이다. 자전거를 울타리에 묶어 세워두고 내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인 콜드브루를 주문했다. 그 때 커피를 내려주시곤하던 사장님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튼, 테이크아웃으로 한 손에는 커피를, 한 손에는 자전거를 끌며 집으로 향했다. 달다.
이날은 거의 1시간 40분 정도를 탔다. 이제 더 멀리 가봐야지. 그 다음에는 두시간을 채워야지. 자꾸 욕심이 생긴다. 아, 이제 내 휴가도 일주일 남았다. 코로나 때문에 일 못 나간다고 앓는 소리는 해도, 쉬는 이 시간들이 너무 즐거운가보다. 사실, 너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