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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나 Dec 16. 2020

파울로 코엘료, <순례자>

내 어린 시절의 혁명,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를 다시 읽고 있다. 중학생 때 필독서였던 '연금술사'를 읽고 한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 해리포터 이후로 처음이었을거다. 몇 번이고 곱씹으며 읽었다. 살 책이 없음에도 학원 마치고는 종종 서점에 들려 같은 작가의 책들을 찾아보는 날들이 생겼다. 선뜻 읽지 못하다가 고등학생이 되고 어느 날 제목에 이끌려 그의 또다른 책을 집어들었다.


  '순례자'. 영혼이 들어가 있는 단어처럼 보였다. 고행과 깨달음, 영적인 길로의 안내, 연금술사를 사랑했던 이유 중 하나였던, 우주에 대한 통찰을 또다시 보여줄 것만 같았다. 당시 사춘기의 끝자락에 있던 나는, 내가 왜 존재하는가,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이며 어떤 삶을 살아가야하는가를 난제로 두고 우울감에 취해 있었다. 이 책은 곧 큰 충격을 주었다.

   

이전보다 조금더 깊게 철학적인 사고를 하고 싶어졌다. 내 자신에 대한 신뢰와 세상에 대한 사랑이 가능해졌다. 비현실적인 물질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조금 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사람이 된 것만 같았고 언젠가는 순례길을 꼭 걸으리라는 다짐을 했다. 그렇게 내내 무수한 떨림과 전율 속에서 한 번의 정독을 했다.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내 가슴 안에는 겸허한 사랑이 있었다. 그 후 10년 동안 다른 오래된 책들이 책장을 떠나고 새 책들이 꽂히는 동안에도 이 책은 자리를 지켰다. 늘 한 사람의 다정한 어루만짐 속에서, 그립고 소중한 존재를 바라보는 눈빛 안에서.


10년 만에 꺼내들다


   아홉수를 앞둔 지금, 문득 펼쳐들었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동안은 괜한 부담감에 다시 읽을 엄두를 내지 못했었지만 지금은 그래도 될 것 같았다. 그렇게 조심스레 책장을 열어 딱딱한 표지 안쪽에 적힌 작가 소개부터 찬찬히 읽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에 정신병원에 오래 입원해있었고, 그 이후에 음악에 푹 빠져있다가 어떠한 일들로 감옥에 갇혀 몇 년을 보냈다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출소 후 글과 음악에 관련된 일들에 매진하다가 40세에 순례길을 걸었고, 다녀온 후부터 <순례자>를 시작으로 집필한 모든 책들이 인기를 끌었다는 말들. 머리가 띵했다. 어떻게 이토록 평범했던 한 사람이 40이 넘어서는 나이에 어쩌면 이리도 아름답고 숭고한 책을 내놓을 수가 있지? 어릴 적부터 마음 깊이 품었던 고통과 사랑 안에서 자신의 영혼을 단련시켜 온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국엔 그를 알아봐주고 이끌어주는 스승을 만났기에, 그가 본모습을 찾고 글로서 많은 것들을 전달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그 과정에 순례길이 있었고, 그 길을 걸으면서 그가 깨닫고 배운 것은 어마어마할 것이라고.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들은 이미 내면과 세상 안에 있던 진리일 뿐이라고.


고통의 실체화 훈련

  

   어느덧 책의 중반부를 넘어서고 있다. 매 장마다 깨달음과 감동이 스며있다. 어릴 때에 읽었던 것과 사뭇 다른 느낌이다. 읽다보면 일상에서 수행할 수 있는 여러 훈련들이 나오는데, 그 중 한가지 훈련의 효과를 제대로 느끼고 있다. 종종 머리나 마음에서 부정한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이를 다스리지 못하면 우리는 스트레스와 고통에 휩싸이게 된다. 마음의 고통은 육체의 고통과 달리 눈에 보이지도, 뚜렷한 인과관계를 나타내지도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무게를 모르고 그냥 방치한다. 결국 마음은 조금씩 좋지 못한 쪽으로 향하고 끊임없이 찾아드는 미움, 분노, 불안, 질투 등의 감정들에 익숙해지고 만다.

   하지만 마음 역시 과거와 미래에서부터 야기되는 고통으로부터 멀어지는 훈련이 필요하다. 이를 알아차리고 제지하기 위해서 마음의 것을 육체의 고통과 연결시키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안 좋은 것들이 떠오를 때마다 검지손톱으로 엄지손톱 안쪽 살을 꾹 누른다. 마음의 고통을 육체의 고통으로 실체화시키는 작업이다. 통증이 몰려오면서 몸을 아프게 하는 것을 본능적으로 멀리하듯이 내 마음을 상처내는 생각들을 순간 깨닫고 멈추게 된다. 결국 그것들은 어떠한 정답도 진리도 아니었고 그저 고통을 일으키는 사소한 감정에 불과한 것이다. 이 훈련을 거듭하다보면 고통을 주는 감정들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빈도수가 낮아진다. 머리와 마음이 부정한 것들에 사로잡히는 것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게 해준다. 오늘 아침 명상에서 들었던, 생각과 실재는 다르다는 말이 떠오른다. 날카로운 종이 날에 손가락이 베이면 아프지만, 종이는 그저 종이일 뿐 그 무엇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나를 힘들게 하는 생각들은 그저 생각일뿐 그 무엇도 아니다. 뜨거운 주전자, 예리한 칼날, 위험해보이는 대상들로부터 떨어져서 몸을 아끼듯이, 마음을 해치는 것들로부터 역시 자신을 멀리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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