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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나 Aug 15. 2022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로 보기

생각

사람들이 나를 보는 이미지는 때때로 자신을 숨 막히게 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면 대체로 그들 중 90퍼센트는 나의 첫인상을 비슷하게 본다. 얌전하고 차분하고 여성스럽고 조용할 것 같고,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할 것 같은 이미지. 엠비티아이가 E라고 하면 다들 화들짝 놀란다. 당연히 I일거라고 확신을 했다면서.


  초등학생 때부터 늘 한결 같이 유지했던 이 이미지가 나는 솔직히 싫었다. 학창시절에는 더 심했다. 나는 순종적이지도 않고, 얌전하거나 착하지도 않은데, 더더욱 그런 사람이 되는 건 너무나 싫은데, 내가 싫어하는 성격으로 사람들에게 보인다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괜히 활발히 행동했고 주도적이고 주체적으로 움직였고 소심하거나 겁쟁이처럼 행동하지 않으려고 애썼던 것 같다. 주변이 보는 내 외모와 태생적으로 배려적이고 조심스러운 행동으로 인해 파생된 나의 이미지는 족쇄였고 그래서 답답했고 벗어나고 싶었다.

  

  다행스럽게도 점점 나이를 먹어가면서 오래 친하게 지내는 친구들이 늘어나면서 조금씩 나를 잘 모르는 이들이 나를 정의내리려고 하는 그 '이미지'에 대해서 전보다 덜 신경쓰이게 되었다. 이는 오랜 시간 친했던 친구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알고나서부터였다. 나와 얕은 관계의 사람들과 깊은 관계의 사람들이 바라보는 시선은 정말 달랐고, 그만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이해하고 알고 있는 그 친구들에게 깊은 애정과 안정감을 느꼈다. 덕분에 새로운 만남 앞에서 억지로 나를 더 나타내려고 애쓸 필요가 사라졌다. 나는 누군가에게는 내 자체로 보이고 있으니까. 그 사람 역시 나와 조금 더 친해지게 되면 나를 제대로 봐줄 거라는 걸 아니까. 그러면서 나를 진정으로 봐주고 내가 아끼고 애정하는 사람들이 누구인가에 대한 고민이 생겼고, 평생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을 한 두명씩 늘려갔던 것 같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알아본다는 것


  요가를 하면서 통찰력이 있는 사람들을 한 둘씩 만나게 되었다. 그들은 금방 나에 대해 파악하고 나에 대한90%의 뻔한 말이 아닌 10%에 대해 이야기했다. 나는 비교적 속얘기를 잘 안 한다. 경험과 생각과 깨달음에 대한 잡다한 이야기들을 잘 하지 못한다. 이해받지 못할 걸 알고 완전히 그들의 관심 밖임을 알기에. 그러다가 어쩌다 넌지시 이야기가 나오면, 아, 너가 그런 고민도 했어? 전혀 그래보이지 않는데! 라며 자신이 멋대로 규정지은 나에 대해 이야기하며 곧바로 자신의 이야기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반면에 아, 너가 그런 면이 있었구나,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다른 점이 많아서 좋아, 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후자의 경우는 금세 내 사람의 바운더리로 들어오지만, 전자의 경우에 이런 류의 사람들은 좋아할 수는 있어도 존경하지 못한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더 안하게 된다.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이들 앞에서는 정말 나의 속 얘기가 잘 나온다. 그럴 때면 상대방 역시 다른 데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을 나와 나눈다. 그렇게 서로의 깊은 얘기를 나누는 것이 좋다. 정말 사소한 부분까지, 그렇지만 자신에게 꽤 큰 의미가 있는 부분까지 공감해주고 알아듣는 이와 함께 하는 시간은 소중하고 가치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런 대화가 되는 사람들 위주로 주변이 채워지는것 같다. 여러 명의 만남보다 1:1의 만남을 선호하고, 술자리 얘기보다 카페에서의 얘기가 더 좋고, 뻔한 우스갯소리나 피상적인 이야기보다 그 내면에 잠재된 생각과 가치관을 공유하는게 좋다. 누군가를 만나고자 하는 마음이 들 때 그와 같이 하면 좋을 것들을 먼저 생각한다. 그의 취향과 관심사, 혹은 내가 어떤 것을 소개해줘야 즐거워할 것인지 등등. 그 사람의 생각과 경험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나는 흥미가 생기는 사람을 만나면 질문이 참 많다. 그를 속속들이 알고 그가 살아온 인생을 느끼고 싶다. 어떤 사람인지, 나와 어떤 부분에서 즐거움과 의미있는 시간을 나눌 수 있을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응원하는 일에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 또한 새로운 사람이든, 오래된 친구든 대상을 함부로 판단하고 마음대로 규정내리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더 귀기울여 듣고 그 안에 내재된 감정과 생각과 가치관을 바로 보려고 노력한다. 이전과 달라진 생각과 가치관이 있다면 너 예전에는 안 그랬잖아! 라고 하기보다 그냥 덤덤하게 그 친구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사람은 늘 변하니까. 나도 늘 변하고 그 변화 앞에서 누군가가 왜 변했어? 왜 더 나은 사람인 척해? 라는 눈빛을 보내면 기분이 좋지 않을 테니까. 더 나은 방향으로 변하는 것은 언제나 축하해줘야 할 일이다. 만약 내가 좋은 쪽으로 변하는 사람 앞에서 나도 모르게 못난 말이 나오려고 하거나 그런 감정이 치솟을 때면, 일단 입을 다물고 그날 밤 자기 전에 내가 왜 그럴까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의 어떤 뒤틀린 면모가 상대방을 온전히 바라봐주지 못하는지를 말이다. 그렇게 여러 시행착오와 성찰을 통해 조금씩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하고 있다. 이는 상대를 위한 것이 아닌 내 스스로를 위한 것이다. 나의 내면을 바로 보고 모난 것들을 조금씩 치유하며 위선이 아닌 진심으로 상대를 생각해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 안에서 나의 마음도 애정과 설렘으로 충만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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