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차림
누군가와 사랑이라는 명목 아래 관계를 시작하고 이어가는 일은 늘 어렵다. 한 사람을 만나서 서로의 호감을 확인하고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관계가 되는 일, 나는 이게 왜 힘들까? 짧게 스쳐 지나간 사람들을 제외하면 거의 6년동안 연애를 쉬었다. 일하고 사람들 만나서 놀기에도 바쁘기도 했고, 이대로도 즐겁기에 연애를 할 필요성을 못 느끼기도 했고, 내 시간과 체력과 돈과 바꿀만큼 좋아하는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서, 라고 연애를 하지 않은 이유를 대어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그리고 한 사람과 연인이 되었다. 사랑 안에서 마음껏 경험해보라는 스승님의 말씀 덕분에 피하지 않고 용기를 낼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까지 썸을 포함한 두 달이라는 시간 동안 정말 많은 나를 발견하고 있다. 명상을 하게 되고 감정과 마주하는 법을 배우는 시기에 왜 이 사람이 내게 나타났을지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있다. 그 등장 자체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그가 좀더 특별하게 느껴진 것도 맞다. 그리고 지금 생각했을 때, 나의 오래된 마음의 습들을 경험해보라고 그가 나타났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몰랐었는데, 나는, 좋아하는 이에게 사랑받지 못할까봐, 버려질까봐 떨고 있었다. 그래서 그동안에도 누군가를 쉽게 사랑하지 못했고, 누군가의 사랑을 쉽게 외면했다. 먼저 호감을 가진 것도 그고, 고백한 것도 그인데, 관계 안에서 스스로 약자처럼 여기는 숨겨진 마음을 발견했다. 계속해서 그의 사랑을 의심하고 있었다. 왜 나야? 주변에 다른 여자들도 많고, 친한 여자들도 많은데, 왜 난데? 어떻게든 이유를 찾았다. 그런데 이유가 보이지 않았다. 내가 고백하기 만만해보여서 그런 게 아니었을까? 내가 그나마 고백하면 잘 받아줄 것 같아서 그런게 아니었을까? 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다른 매력적인 사람들에게 마음을 갖고있으면서 그들이 받아주지 않을 것 같아서 나랑 만나는 게 아닐까? 그래서 나에 대한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다. 그가 나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감조차 오지 않지만, 적을 거라고 은연 중에 생각하는 내가 보였다. 자연스럽게 두려움이 따라왔다. 왜냐하면 금방이라도 그가, 나를 선택한 것을 후회할 것만 같았다. 얕은 호감이 금세 사라질 것 같았다. 그래서 버려질까봐, 나 역시 쉽게 나의 마음을 키우지 못했다. 마음을 키워버리고 났는데 그의 식은 눈빛을 보게 될 것을 감당하지 못해서, 나의 감정을 억제했다. 아직은 그가 많이 좋은 건 아니야. 적당한 호감이야. 사람이 좋아서 만나보는 거야. 라는 생각들을 했는데 무엇이 진실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확실한 건 그 감정을 키우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 정말 수동적이게도, 그가 나를 사랑해줄수록, 더 많이 좋아해줄수록 나도 그를 좋아하게 될 것 같았다.
그와의 관계 안에서 유독 이런 마음들이 올라오는 이유도 있다. 나에게만 올인하거나 그의 모든 삶의 관심이 나에게만 향해 있지 않아서.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하는 일들도 많고 만나야하는 사람들도 많아서. 그의 일상을 다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 나를 만나는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어서. 그런데 그런 행동이 비정상인가? 그러면 내게 푹 빠져있는 사람처럼 행동하기만 하면 그는 나를 사랑하는 건가? 처음에는 그렇게 행동했다가 나중에 변하면 그게 더 마음 아프지 않을까? 라는 생각들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겨서 그와의 관계를 놓지 않고 지속할 수 있다. 매순간 올라오는 마음을 끊임없이 바라봤다. 더 본질을 보고자 했다. 괴롭다기보다 놀라웠다. 나는 결국에 버려질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모든 부수적인 감정들을 불러일으키고 있었음을 알게 되었다.
슬펐다. 왜 나는 연인이 생겨도 마음껏 사랑하지 못할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지? 사랑받지 못하는 것, 그리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끝없이 올라오는 익숙한 감정들. 그가 연락이 늦어질 때는 아, 나를 덜 좋아하는구나, 라는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과의 약속에 나갈 때도 그곳에 있을 여자들이 신경쓰였다. 왠지 그 사람이 나보다 다른 여자들이 더 낫다는 것을 알게 될까봐. 나에 대한 호감이 사라지고 다른 이에 대한 더 큰 호감으로 연결될까봐. 아, 자꾸만 올라오는 두려움. 확인받고 싶은 마음. 결핍. 그로 인한 질투, 그리고 어떻게든 통제하고 싶은 마음들이 끝없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이 마음들은 6년 전의 내 연애에서 고스란히 존재했던 것들이기도 했다. 그 때의 나를 괴롭게 만들었던 감정들. 그 때문에 그 이후로 연애를 하지 않는 그 편안하고 고요한 시간들이 더더욱 좋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밝은 감정과 어두운 감정은 늘 공존할 수 밖에 없다는 스승님의 말씀처럼, 기꺼이 그 어둠 안으로 뛰어들어 경험해보기로 했다. 나를 더 바라보기로 했다. 그렇게 삶의 태도를 바꾸자 이 연애가 단순히 고통으로서만 다가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행복하지도 않다. 설렘도 없다. 갈수록 풀 수 없는 문제들이 떠오른다.
얼마 전에 이 이야기를 요가원 원장님께 했더니, 선생님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고 있네요? 라고 하셨다. 아, 맞구나. 감정을 바로 보기 시작하면서 내 자신에 대한 사랑이 부족함을 알게 된 게 한 달 전인데,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구나. 어쩌면 나는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내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스로 자존감도 높고 스스로를 무척 사랑한다고 여기며 살아왔는데, 이토록 낮은 자존감이라니, 슬펐다. 그리고 미안했다. 그런데 아직도 나는 모르겠다. 이 사람이 나를 얼마큼 좋아하는지. 금방 마음이 식어버리지나 않을지. 나는 이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게 맞는지.
나의 마음을 알아차렸으니, 명상으로 들어가보면 되려나. 왜 나는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는지. 왜 나는 누군가의 나를 향한 사랑을 믿지 못하는지.
아, 나는 사랑의 정도를 비교하고 있구나. 마음의 크기를 비교하는구나. 어렸을 때도 그랬다. 초등학생 때 나랑 친한 친구가 다른 친구랑 더 친하게 지내는 것이 못 견디게 질투났다. 그 마음이 여전히 있구나. 사실 이성 뿐 아니라 동성에게도 이 질투심과 비교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 마음의 크기를 비교하는가? 인정욕구, 내가 보잘 것 없는 사람일수도 있다는 사실이 못 견디게 무서워서. 그게 왜 무서워? 나를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타인의 마음이야? 타인이 나를 좋아하지 않으면 나는 특별한 존재가 아닌게 되는거야? 아니지. 나는 나 자체로 나일뿐인데.
그렇다면 나는 왜 버려질 것을 두려워하지? 버려진다는 게 뭔데? 그가 더이상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그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게 왜 무서워? 그만큼 나는 매력이 없는 사람이라는 거니까. 내가 별볼일 없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 별 볼일 없는 사람이라는 게 뭔데? 타인이 나를 좋아하면 나는 괜찮은 거고 아니면 나는 별로인 사람이 되는거야? 이것 역시 위와 같네. 결국에 버려질까봐 두려운 마음 역시, 내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서 나를 향한 타인의 관심으로 나의 존재를 비추고 있었던 거네. 건전지를 바꿔 가면서. 아슬아슬하게. 꺼져가는 건전지를 두려워하면서.
아, 그리고 내가 이미 누군가를 만날 때 그를 판단평가하고 있었구나. 내가 느끼기에 매력있는 사람만을 좋아하면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안중에도 두지 않으면서. 어릴 때부터 집단 속에서 사람들의 눈빛과 태도만 봐도 누가 누구에게 인간적 호감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외모에서 큰 매력이 없었던 나는,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했다. 그들이 나를 대하는 눈길 안에 빛이 반짝일 때마다 느꼈던 만족, 쾌감, 기쁨, 그러한 것들이 어쩌면 내 삶에서 행복을 가져다주는 커다란 부분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 마음이 꺼져가는 것은 나의 불행과도 연결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토록 마음의 크기를 확인하려고 했을 수도 있겠다. 특히 연인에게는 더더욱.
아직, 두렵다. 이제 시작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