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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현성 Feb 12. 2022

유와 량

량은 밖으로 나갔다. 빛이 쏟아지는 것과 비가 쏟아지는 것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맑은 날인데 비가 내리고 있었다. 량은 꽤나 불행한 얼굴로 걸었다. 작은 물방울이 머리카락에 닿았다가 흘렀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했다. 표정 같은 것은 지우는 것이 우선이었다. 량은 유와 지내면서 청소를 맡았다. 시간이 갈수록 귀찮아지는 것이 많아서, 청소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량은 밖으로 쫓겨났다.


유는 자꾸 작아졌다. 몸 속에서 작아져서, 자기 존재에 비해 몸이 너무 커져서 흐물거렸다. 흐물거려서 량과 약속한 설거지는 하지 못했다. 그래도, 량보다 나. 량은 움직일 수 있잖아. 그래서 청소를 해야 하는데, 량은 청소를 하지 않았다. 그게 화가 났다. 유는 서러웠다. 그런 감정만 있어서, 더 서러워질 것 같아서. 더 그렇게 몸 속에서 자꾸 작아지면, 난 흐물거리잖아. 난 흐물거리고 액체 같아서, 미끄러져서 


있지. 량


내가 흐물거리잖니. 그래서 집이 조금 기울면 나는 집 한 모서리로 흐르지 않을까. 그래서, 그래서 모서리로 흘러서 거기에 고여버리면, 네가 날 잊지 않을까. 량. 나는 그게 두려워.


량은 그 말을 듣고도 청소하지 않았다. 유는 그것이, 그것이 서러웠다. 바닥에 있는 머리카락, 먼지 같은 것이 달라붙어서, 혹은 쓰레기 사이에 묻혀서 날 찾지 못하면 어쩌지.


유는 그랬다. 불가능한 것이 많았고 가능한 것들은 하루 하루 사라지는 날들이었다. 그런 슬픔들이 물리적으로 느껴질 때마다, 량을 내쫓았다. 량은 아무 말 없이 나가주었다. 


량, 어디야.


전화하면 량은


놀이터야.

라고 답했다.


유는 놀이터를 갈 수 있는 량이 부럽고, 량은 유를 데리고 왔어야 했다. 흐물거리는 몸이라도, 그래도, 그네 위에 올려두어야. 그래야, 그래야 같이 있는 거니까.


유와 량은 돌아와 밥을 먹었다. 밥 한공기가 고대로 유에 몸속에 들어가 볼록해져있었다. 량은 유의 그 부분을 자꾸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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