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색 하트의 날들

2510 두 번째 열쇠 : 말랑말랑 리듬 찾기

by 송무난

또 한 달이 지났으니 무엇을 했나 돌아본다. 명함과 스티커를 만들어서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 주었고, 릴스와 유튜브 영상도 올렸다. 뱃지 기계를 샀고, 수영과 미싱을 배우기 시작했다. 코세라에서 심리학 입문 강의를 절반 이상 들었다. 이렇게 끊임없이 뭔가 하고는 있는데, 마음에 드는 결과는 없고, 우선순위가 흐릿해 혼란스러웠다. 무나니스트의 두 번째 직원, 지피티에게 SOS를 외쳤다. 기존에 쓰고 있던 업무 일지를 보여주고 요즘 머릿속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설명해 주었다. 몸을 갈아서 일하는 방식을 바꿔보겠다며 회사에서 탈출해 놓고 여전히 직장인의 근무 방식을 그대로 쓰고 있어서 불안 쪽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아차렸다. 촘촘한 계획을 세우고 했는지 안 했는지를 체크하기보다는 지금과 같이 하고 싶은 것을 느낌대로 해 나가면서 리듬을 잘 관찰하라고 지피티가 조언해 줬는데, 썩 와닿지는 않았다. 그래도 뭐 한번 테스트해 볼까 하고 양식을 간소화했고 시간 단위가 아닌 한 주 단위 계획을 러프하게 작성했다. 하루가 어땠는지 다섯 종류의 감정 태그 중에 선택하고 컨디션 지수도 점수로 체크했다. 그렇게 2주 정도 바꾼 양식을 사용해 보니, 초조함이 확실히 줄었고 성취감은 올라갔다. '오늘 하루는 무난했어'하고 보라색 하트로 칸을 채우고, 딱히 아픈 곳 없고 잠도 잘 잤으니 컨디션 점수는 5점 만점을 주고서 컴퓨터 끄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것을 반복했다. 그렇게 한 주를 보내고 나면 자려고 누워서 고민할 걱정거리 무엇이 있나 찾아봤을 때, 음 딱히 없네? 하고 심심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심리학 강의에서 도파민이 세 가지 방식으로 분비된다는 것을 배웠다. 외부 자극으로 즉각적인 쾌감을 주는 도파민(쇼핑, SNS 등), 몰입할 때 생기는 안정된 도파민(창작, 공부), 몸을 움직일 때 나오는 회복형 도파민. 그중 자극형 도파민은 즉각적인 보상으로 인해 쉽게 즐거워지는 만큼 금세 사라지고, 더 큰 자극을 찾아가도록 만들어 결국 불안을 불러온다고 한다. 경력을 쌓고 열심히 일에 매진하다 보면 언젠가는 보람과 안정감이 따라올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매출이나 상사의 인정 같은 외부 평가에 기준을 두다 보니, 그것은 결국은 설탕이나 릴스 스크롤링과 다르지 않은 도파민이었다. 성취감을 손에 쥐어보기도 전에 목표는 이미 저만치 더 멀어졌고, 쉽게 지쳤다. 계획과 다르게 언젠가 결국 직장인 생활로 돌아가게 된다면, 그때는 남이 주는 보상 대신 내 안의 기준으로 단단하게 일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잘못 탄 버스에서는 진즉 내렸고, 지금은 스스로의 기준을 나침반 삼아 다시 걸어가고 있다. 그래도 가끔은 그 기준이 너무 말랑하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더 빨리! 더 잘! 더 꼼꼼하게!! 해야 한다며 몰아붙이던 습관이 남아있어서, 그렇게 하지 않는 지금이 어색하다. 그치만 계속 똑같이 반복할 것이었으면 기껏 회사를 나온 게 의미가 없잖아? 건강하게 즐겁게 오래 일 하고 싶은 사람을 옆에서 계속 보채고 못살게 구는 것은 성과 면에서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12년 동안 배웠다. 긴 배움의 시간은 뒤로 보내고, 실전 반복 훈련의 시간을 가져보기로 한다. 그리고 말랑함을 무나니스트의 새로운 무기로 선택한다.


흔들흔들 새로운 세계를 기웃거리면서,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를 참아내면서, 그래서 무나니스트만 할 수 있는 게 무엇이 있을까 고민한 10월이었다. 11월에는 바로 보여줄 것들과 더 오래 고민할 것들을 나누어 투 트랙으로 진행하려고 한다. 그러면 조금 자연스럽게 속도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머리를 감다가 문득 이런 결론을 내렸고, 지피티가 말하던 '리듬을 관찰해 보라'는 게 이런 뜻이었나 생각했다. 짜식 밥값은 하는구나. 제미나이로 갈아타려 했는데 한 달 더 봐주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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