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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간 개복치 Aug 08. 2016

파스타를 삶을 때 말하고 싶은 것들

나의 대학생활과 하루키

하루키 책을 99년에 처음 읽었다, 대학교 2학년 때다. 20대 독자는 놀라겠지. 그런 원시 시대부터? 그렇다. 하루키는 그때도 대단한 인기 작가였다. 아니 당시 인기는 지금보다 더 높았다.


독서 좀 한다는 사람 중 하루키 책 한 권도 안 읽은 이를 찾기 힘들 정도였다. 많은 이가 하루키가 언급하는 문학을 읽었고, 더 많은 이가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음악을 따라 들었다. 젊은 소설가들의 문체는 급격히 하루키화됐다(지금 30대~40대 소설가 중 하루키에게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가 몇 있을까?).


텔레비전의 광고에도 하루키 소설이 등장했다. 덜컹거리는 기차 안 BGM으로 조성모가 리메이크한 ‘춘천가는 기차’가 깔리고 낯선 남녀 사이에 미묘한 눈길이 오간다. 남자 쪽이 말을 건넨다. “노르웨이의 숲을 아시나요?”(앗! 오그라든 내 손발)


노르웨이의 숲은 ‘상실의 시대’의 원 제목이다. 당시는 문화교양주의가 득세하던 시절, 하루키 책은 엄청난 판매량만큼이나 어마어마한 비난도 들었다. 감상적인 문체와 브랜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소비주의적 스타일, 무엇보다 그의 소설이 ‘메시지’를 담고 있지 않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사회 문제를 지적하지도 않고, 보편적인 덕목을 장려하지 않으니 평론가들은 헷갈렸다.


여하튼 열광이든 비난이든 하루키는 현상이었다. 먼 미래 누군가 90년대를 통째로 박물관에 보관한다면 한 섹션 정도는 하루키가 차지하지 않을까. 그리고 누군가 (아무도 그래 주지 않겠지만)내 20대를 박물관에 통째로 보관한다면 역시나 한 섹션 정도는 하루키가 차지할 게 분명하다.   
 
많은 대학생이 오춘기를 겪지만 대학 시절 내 상태는 개중에도 심각했다. 무기력감이 온몸을 엄습했고 2학년 때 학점이 1.3으로 떨어졌다. 2학년 여름방학 쯤이 되어선 무려 인생이 끝났다고까지 여겼다. 과정은 이러하다. 우선 공부만 알던 내향적 부산 소년이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입학한다.


아는 이 하나 없다. 자취를 시작하고 학교에서 친구들을 만난다. 학교 옆 자취생은 친구 사귀기 편하더라. 술자리 끝까지 남아있으니 자연스레 추억이 공유되고 동질감이 형성된다. 부산 소년은 친구들과 매일매일 붙어 다니며 수업도 함께, 술도 함께, 시위도 함께, 스타크래프트도 함께 한다. 어찌나 붙어 다니던지 모임 이름마저 늘 본다는 뜻의 ‘늘보’였다. 여름 방학 땐 농활-지리산 여행-부산 여행을 연달아 함께 하느라 거의 한 달간을 함께 먹고 잔 일도 있다.


대학입학이라는 단순한 목적이 사라진 자리를 ‘자와 타의 경계가 허물어진 공동체적 세상’이 자리 잡았다. 소년은 몰랐지만 이런 공동체는 지속될 수 없다. 모두 제 앞날을 위해 찢어져야 할 순간이 온다. 지금 20대 독자는 “뭐 그렇게 당연한 소리를”하겠지만 98년이 IMF 첫해였던 걸 기억하자. 그전까지는 대학 졸업이 곧 취업이었다. ‘스펙’이란 용어 자체가 없었다. 취업 못한 선배들이 흙빛 얼굴로 동아리 방에 앉아있자 친구들은 “이제 정신 차려야 한다”며 하나둘 모임을 떠나갔다. 대부분 군에 입대했다.


항상 반 박자 늦던 나만 군대에 안 가고 덜렁 남겨졌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때마침 키우던 토끼도 숨을 거뒀다. 텅 빈 자취방에 앉아 아몬드 안주에 진로를 한 병 까고 나는 생각했다. ‘이제 뭘 해야 할까?’

“내가 할 일이 무엇인지 알려면 먼저 내가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지를 알아야 한다.” 철학자 알래스테어 매킨타이어의 이야기다. 그는 인간이 서사적 존재라고 말했다. 세상을 어떤 곳으로 인식하느냐에 사람은 자기 역할을 정립하고 거기서 사고와 행동 방식이 결정된다. 벤처를 창업한 젊은 사업가는 세상 사람을 취업자와 창업자로 나눈다. “남들은 안락한 월급쟁이의 길을 택했지만 나는 어려운 길을 택했다. 나만의 아이디어로 세상에 도전해보겠다.” 사회활동에 몸을 던진 20대에게는 아름다운 가치를 파괴하는 자본주의적 해악을 막는 용사로서 자신을 포지셔닝한다. 탄소 배출 안 하기의 일환으로 냉장고와 에어컨을 내다 버릴지도 모른다.


벤처 CEO와 시민단체 간사가 살아가는 21세기 대한민국은 물리적으로 동일한 곳이지만, 그들의 서사 속에는 그곳은 전혀 다른 모습을 띈다.

그 어떤 서사도 상실한 99년 여름, 대한민국은 나에게 텅 빈 공간이었다. 아무것도 없었으며 굳이 따지자면 진부함만 가득했다. 그곳엔 드라마 가십과 조모임 준비가 있었다. 전혀 드라마틱하지 않은 일상이 천연덕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펼친 책이 『상실의 시대』다. 조용한 학교 도서관 열람실에 앉아 『상실의 시대』를 한달음에 다 읽고 도서관 흡연장소에서 담배를 한 대 피운 후 다시 들어가 『세상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었다. 다음날은 『양을 쫓는 모험』을 읽었다. 그 다음 날은 『댄스 댄스 댄스』를 읽었다.


하루키의 소설엔 거대한 사건은 없었다. 주인공은 하나같이 약간은 내향적인 보통 사람. 사건은 평범한 일상을 끼고 벌어진다. 자신을 뒤흔드는 사건의 와중에서 그들은 가벼운 록을 배경음으로 파스타를 삶고, 바에서 위스키를 마시며 ‘위대한 개츠비’를 읽었다. 록과 개츠비는 그냥 소설을 꾸미는 장식이 아니다.


개인의 바램과 상관없이 움직이는 세상에서 자기만의 서사를 구축하는 무기다. 주인공들은 세상이란 거대한 시스템에 맞서 개인적 삶의 소중함을 일상을 통해 주장했다. ‘세상이 어찌 되든 넌 너의 인생을 살아야 한다. 세상엔 수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결국 중요한 건 너의 눈과 몸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언젠가 자기소개서 잘 쓰는 비법을 알려달라는 독자 편지를 받고 하루키는 굴튀김에 대해 써보라고 답했다. “당신이 굴튀김에 관한 글을 쓰면, 당신과 굴튀김의 상관관계나 거리감이 자동적으로 표현되게 마련입니다. 그것은 다시 말해, 끝까지 파고들면 당신 자신에 관해 쓰는 일이기도 합니다.” 결국 우리가 일상을 어떻게 채워가느냐가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고 우리의 서사인 법이다.


파스타 면을 삶을 땐 모름지기 아무 생각없이 면 삶기에 집중해야 한다. 1분이라도 더 삶으면 면이 퉁퉁 불어버리고 1분이라도 덜 삶으면 면 속이 딱딱하다. 그럼에도 누군가 굳이 뭔가 말해보라고 자꾸 주문한다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대학내일 이정섭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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