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너를 잊겠어
바둥이가 가고 처음으로 바둥이 꿈을 꿨던 날이었다. 바둥이가 아프기 전에 자주 하던 대로, 내 왼쪽 팔에 바둥이를 뉘이고 내 품에 바둥이를 낀 채로 함께 낮잠을 자고 있었다. 갑자기 바둥이가 사람 말을 했다.
어차피 나를 까먹을 거잖아.
그 순간 꿈인 것을 알았다. 꿈인 걸 알면서도 아니라고, 너를 잊지 않을 거라고 최선을 다해 계속 말했다. 꿈에서 깨면서 울기 시작했는지 꿈에서부터 울기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눈을 떠보니 울고 있었다. 꿈에서 방금 느꼈기 때문에 바둥이의 부드러운 털과 따뜻한 체온, 적당한 무게감이 다시 생생히 떠올랐다. 다시 처음처럼 슬프기 시작했다. 이 과정이 얼마나 더 반복될지 생각하면 너무 막막하면서도, 이렇게 바둥이를 더 천천히 보내고 싶기도 했다. 그렇지만 바둥이가 떠난 뒤로 꿈에 나온 건 그 한 번이 다였다.
바둥이는 의연하게 갔다고 했다. 딱 이틀, 밥과 물을 주려고 할 때마다 입을 꾹 다물었다고 했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동생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숨을 확인했을 때, 잠시 숨을 몰아쉬더니 천천히 잦아들었다고 했다. 살아있는 동안 바둥이에게 배운 점이 정말 많았는데, 마지막 순간에도 중요한 걸 가르쳐주고 갔다. 나는 그 후로 죽음이 전보다는 무섭지 않게 되었다. 바둥이가 겪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무섭지 않은 과정이었으면 좋겠고, 바둥이가 겪은 것인데 나도 당연히 겪어야 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햇수로는 4년이 지났다.
나는 바둥이를 얼마나 잊었을까.
어느 순간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 흰 털이 복슬복슬한 개를 보고도 맘이 쿵 내려앉지 않게 되었다. 클라우드에 자동 올리기 설정을 해두었던 때 잔뜩 모인 바둥이 사진이 '몇 년 전 오늘' 하며 휴대폰 화면에 떠도 웃음 지으며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내 아이들을 부를 때 나도 모르게 내 입에서 아이들의 이름 대신 바둥아 하는 말이 나올 때가 있다. 나나의 태명은 바둥이 동생이라는 뜻의 바동이었다. 그래서 그런가 나나의 몸짓과 표정을 보면서 괜히 어딘가 바둥이랑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재재를 재울 때 종종 옆으로 누워 아이에게 팔베개를 해주고 도닥거리곤 한다. 재재의 무게감은 바둥이와 꽤 비슷해서 자연스레 바둥이를 안고 자던 시간을 떠올리게 된다.
바둥이는 햇수로 20년, 만으로는 19년을 살았다. 태어나서 3개월 정도를 제외하고는 내내 우리와 함께 자신의 생을 보냈다. 바둥이와 함께한 시간들은 이제 제법 아득한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기억 입구의 거미줄을 조금만 걷어내면 금세 다시 생생하다. 늦었지만 이제서야, 내가 무척 사랑했던 나의 유일한 개, 바둥이에 대한 기억을 기록해 볼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