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너를 만났을 때
20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에 그날이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더 생생할 때 글로 남겨놓았더라면 좋았을걸...
2003년이었다. 여름방학이 오기 얼마 전이었나, 여튼 날이 더워져 가고 있었다. 엄마랑 동생이랑 나는 집 근처 종합운동장에서 매일 저녁마다 자전거 타기나 줄넘기나 배드민턴 같은 운동을 하곤 했다. 해가 길어서 운동을 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도 아직 날이 어두워지지 않았었다.
집에 다다랐을 때쯤 엄마와 친분이 있던 동네 세탁소 아주머니가 인사를 하셨다. 아주머니 품에 아주 어린 강아지 두 마리가 안겨있었다. 둘 다 얼룩이 있는, 그치만 한 배에서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게 몸 대부분이 검은 강아지 한 마리와, 반대로 대부분이 하얀 강아지 한 마리. 검은 강아지가 더 예뻤는데 우리는 이상하게 하얀 강아지에게 마음을 뺏겼다.
키우시던 개가 새끼들을 낳았단다. 새끼들까지 키울 여력은 안 되셔서 다른 강아지들은 다 주변에 보내고 두 마리만 남았단다. 그러면서 한 마리 데려갈 생각이 없냐고 하셨다. 귀여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던 감수성 풀충전 여중딩과, 무엇에 대하여든(특히 온갖 생명체에)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던 남초딩은 이 신나는 제안에 눈이 번쩍 뜨였다. 우리는 모처럼 엄마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그런데 당연히 허락하지 않을 줄 알았던 엄마까지 그날따라 쉽게 허락을 해버렸다. 졸지에 아무 계획도 없이 덜컥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오게 되었던 것이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엄마는 그 무렵 생계를 위해 오후에 아르바이트를 나가기 시작했었고, 초등학생이던 동생이 텅 빈 집에 혼자 들어와 쓸쓸해할 것이 마음에 걸리고 있던 차였다고 한다.
이름을 뭐로 지을까 하다가, 아직 아가라 그런지 시시때때로 바둥거리는 모습이 귀여워 바둥이로 짓기로 했다.(이름값을 하는 것인지 몹시 활동적으로 바둥거리는 개로 자라났다.)
엄마가 성은 김 씨로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집안에 다 문 씨고 나 혼자 김 씨라 외롭다고. 그래서 김바둥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