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행을 빕니다
음. 무슨 말로 시작을 해야 할까, 인사를 먼저 해야 하나 잘 모르겠습니다.
이 글을 쓰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우선은 제가 깨닫기까지가 오래 걸렸고, 그리고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을 만큼 괜찮아지기까지 또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이 편지를 당신에게 보낼 수 없다는 걸 압니다. 당신 앞에 서면 다시 주눅이 들어 하고 싶은 말을 시원하게 다 못 하게 될 것이라는 것도 압니다. 그래도 씁니다. 나만 볼 수 있다 해도. 나를 위해서 씁니다.
저는 당신을 존경했습니다.
'인성은 나쁜데 일은 잘하는 사람'과 '착한데 일은 못 하는 사람' 중에 고르라면 언제나 전자를 고르던 저였으니까요. 그래서 조금 쌀쌀맞아도 일을 잘하는 당신이 좋았고, 당신처럼 일을 잘하고 싶었습니다. 기회가 생기면 당신에게 달려가 질문하고, 귀찮아하는 걸 알아도 조금이라도 더 배우려고 했습니다. 당신의 애정을 받는 다른 동료가 부러웠고, 나도 그 동료처럼 일을 더 잘하면 당신이 나를 마음에 들어 해 줄거라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조건 모든 일을 다 잘했다는 건 아닙니다. 그렇지만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어요. 진짜예요. 한 순간도 일을 대충 하겠다는 생각조차 한 적 없습니다.
당신 눈에 나는 부족하고 많이 모자라 보였겠지만, 나는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한 애를 썼습니다. 내가 못하는 일에 대해서, 나의 실수에 대해서라면 얼마든지 혼날 각오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혼나는 것은 억울하거나 서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분명하게 잘못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회사가 떠나가라 소리 지른 것. 멍청하다, 생각이 없다 등의 발언으로 가스라이팅 한 것. 무시하고 모멸하는 눈빛을 보낸 것. 바쁘니까 나중에 오라며 종이를 집어던진 것. 나를 따돌린 것. 그리고 끝까지 당신의 잘못을 모르는 것.
이제 와 사과받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팀을 옮길 때도 '배신자' '지 밖에 모르는'의 말을 뱉으며 본인의 잘못은 끝끝내 모르던 당신에게 사과는 기대하지 않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어쩐 일인지 나를 잘 대해 주었고, 나도 괜찮은 척 잘 지냈지만 그건 정말로 다 '척'이었습니다.
당신은 스스로 쿨하게 회사를 떠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아닙니다. 당신은 좋지 않게 쫓겨난 겁니다. 만약 당신이 더 버티고 있었다면 당신은 '직장 내 괴롭힘'의 가해자 낙인을 찍고 쓸쓸하게 퇴장했겠죠. 당신의 끝이 그렇게 된 것이 솔직히 조금은 통쾌했습니다. 그래서 그걸로 사과를 받은 셈 쳤습니다.
가해자들은 정말로 본인이 한 일을 잊더라고요. 그리고 본인이 한 일에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나는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걸 당신을 보며 알았습니다. 당신은 잘 살겠죠. 잘못한 게 없으니 떳떳하게 살 겁니다.
그러나 피해자는 잊지 않습니다. 마음에 새겨진 상처를 언제까지나 기억합니다. 잊고 살다가 한 번씩 떠오릅니다. 그 심했던 말과 심장을 찌르는 고성과 밤잠 설치게 했던 눈빛들. 나 이외에도 피해자가 많습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한 번씩 당신의 괴롭힘을 떠올릴 때, 그때마다 조금 아프길 바랍니다. 이유 없이 불안하고, 불행해지길 바랍니다. 나는 이렇게 당신의 불행을 빕니다. 이제 당신의 불행을 빌만큼은 괜찮아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