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나를 잘 돌보고 있다
세상 무엇보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내가, 밥 먹는 게 고역이다.
방금 전 영혼까지 탈탈 털렸는데 마주 보고 밥을 먹자니 도저히 넘어가지 않는다.
대충 깨작거리다가 사무실에 와서 자리에 앉아 다시 일을 한다.
얼마 먹지도 않았는데, 음식물이 소화가 안 되는지 울렁거리고 속이 안 좋다.
집에 도착하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씻고 누워야 하는데, 그대로 침대에 엎어진다.
선잠이 들었다가 나쁜 꿈을 꾸고 놀라서 깬다. 악몽을 자주 꾼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뭔가 해먹을 마음이 들지 않는다. 살이 빠져 바지가 흘러내린다.
자려고 누우면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미처 끝내지 못한 일은 언제 끝낼까, 이미 끝낸 일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 아까 그 눈빛은 뭐였을까, 내가 그렇게 잘못한 걸까, 내일은 또 뭐 때문에 소리를 지를까.
생각하다 보니 심장 뛰는 소리가 귀에 들린다.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 몸 곳곳에 심장이 생긴 것 같다.
몸은 피곤한데 심장 뛰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잠이 안 든다. 아침이 오면 또 출근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위처럼 몸을 누른다. 새벽까지 뒤척이다 겨우 잠이 들지만, 1시간 간격으로 깬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괴롭다. 눈을 뜨면 다시 또 하루가 시작된다.
그럼에도 어쩌지 못하고 일어나 씻고 출근할 준비를 한다. 사무실에 들어서기 전부터 다시 심장이 뛴다.
귀에서 웅웅 거리는 소리가 난다. 이명도 환청도 아니지만, 뭔가가 시끄럽게 질러대는 소리 같은 것이.
억지로도 웃음이 나지 않는다.
일을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숨을 가쁘게 쉬고 있다. 호흡이 모자라면 갑자기 눈앞이 어지럽다.
명치가 찌릿할 때까지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후, 내쉰다.
엄마가 물어온다. 잘 지내니, 어디 아프진 않니?
잘 지내. 괜찮아.
친구가 물어온다. 요즘 일은 어때, 여전히 많아?
일은 많은데 그래도 괜찮아.
회사 동료도 물어온다. 오늘도 야근이네요, 피곤하지 않으세요?
매일 그렇죠 뭐. 괜찮아요.
스스로 면밀히 관찰하고 검토해서 진단을 내린다. 진단명 '습관성 괜찮아 병'
괜찮지 않은데 모든 일에 괜찮다고 말하는 병. 계속 말하다 보니 스스로도 괜찮다고 믿어버리는 병.
스스로 진단을 내렸으니 처방도 스스로 내린다.
- 하루 10분 햇볕 쬐기
- 하루 한 끼를 정성스럽게 차려 먹기
- 하루 한 번 명상하면서 호흡을 깊게 하기
- 하루 삼십 분 땀날 때까지 운동하기
- 하루 한 번 청소하기
- 하루 다섯 가지 좋아하는 것을 생각하기
- 하루 세 곡 좋아하는 음악 듣기
- 하루 세 번 일부러 웃어보기
- 울고 싶을 때 울기
- 괜찮지 않을 때, 괜찮지 않다고 말하기
요즘 나는 스스로 내린 처방을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미세먼지가 나쁜 날에도 잠깐 나가서 햇볕을 쬐고 돌아온다.
하루 한 끼를 정성스럽게 차려 맛있게, 오래 씹어 먹는다.
갑자기 숨이 가쁘다는 생각이 들면 하던 일을 멈추고 명상을 한다.
아침마다 유튜브를 보며 운동을 한다. 복근이 생기고 있다.
하루 한 번씩 청소기를 돌리고, 눈에 거슬리는 곳을 하루에 한 곳씩 청소한다.
오늘은 예쁜 파자마, 베트남 여행, 초코콘 아이스크림, 굶어 죽는 사람들을 돕는 것, 글에 대해 생각했다.
쳇 베이커, 새소년, 브로콜리 너마저 의 음악을 들었다.
예능 프로그램을 틀어두고 실컷 웃었다.
슬픈 장면을 보거나 갑자기 울컥하면 참지 않고 울어버린다.
친구에게 나는 그동안 괜찮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 조금씩 괜찮아지는 중이라고도.
이제 나는 밥도 잘 먹고, 소화도 잘 시키고, 밤에 잠도 잘 잔다. 새벽에 깨긴 하지만, 악몽에 놀라 울진 않는다.
무기력하지 않고, 무기력한 순간도 이겨내보려 한다. 아침에 눈 뜨는 게 괴롭지 않으며 귀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심장은 가끔 크게 뛰지만, 이내 괜찮아지니까 그건 정말로 괜찮다.
나는 오늘도 나를 잘 돌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