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 모든 종류의 글을 쓸 수 있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 3가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연간 500파운드의 돈과 자기만의 방, 스스로 생각하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용기와 자유의 습성.
취업을 하면서 독립을 하게 되었고, 돈과 자기만의 방을 동시에 얻었지만 글은 안 썼다. 꾸준한 수입이 있었고 완전히 혼자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는데 글을 이전보다 더 안 쓰게 되었다. 고작해야 일기나 블로그에 끄적이는 게 다였는데 그마저도 내킬 때만 썼으므로 연속된 과정은 아니었다. 매일이 야근이었고, 그렇게 5일을 보내고 나면 주말은 내 방에서 아무것도 안 하거나 본가에 가서 아무것도 안 했다.
하고자 했다면 30분이라도 틈을 내어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시도를 안 한 건 아니었다. 친구와 함께 글을 써서 서로 교환해 읽자는 아이디어를 내기도 했고, 실제로 실행도 했으나 친구의 포기 선언으로 오래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내가 하고 싶었다면 혼자서라도 계속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쓴다. 뭐라도 쓰고 싶기 때문이다. 지금 느끼는 것들과 옛날에 있었던 일,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과 사람들. 여전히 내 방은 있는데 (내 소유는 아니지만) 이제 돈은 없다.
나는 왜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 졌을까? 글이라는 게 여유가 있으면 안 써지는 건가. 돈이 고정적으로 들어올 때 취미 삼아 썼으면 좋았으련만. 당장 수입을 위해 자소서나 써야 할 텐데 취업과는 전혀 상관없는 글이 쓰고 싶다. 퇴사를 하고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한 건 그저 내 지난 일들을 한 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마음이었다. 난생처음으로 회사다운 곳에서 사무직으로 일했고, 나에게는 여러모로 강렬한 경험이었다. 평생 겪을까 말까 한 일들을 많이도 겪었다. 그래서 정리하는 글을 쓰다가 회사 다닐 때의 다이어리를 보니 너무 치열한 흔적들이 곳곳에 있었다. 어떻게든 살아남아보려고 발악했던 지난날들이 복잡한 숫자와 글자로 남아 있었다.
그 시기의 글들은 오로지 매출과 비용을 계산하고, 연봉과 퇴직금을 계산하는 데 쓰였다. 내 개인적인 일기의 빈 공간은 장수를 늘려가고 있었다. 그러다 드라마 <더 글로리>를 봤다. 재밌고 박진감 넘쳤는데 나는 매 화마다 울고 있었다. 상처받은 주인공이 모든 삶을 걸고 복수를 다짐하는 과정이 너무 애처로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는 게 맞나? 울면서도 생각하고, 울고 나서도 생각했다. 나는 무엇 때문에 학교폭력 피해자인 캐릭터에 이렇게나 몰입하는 걸까. 그러다가 내가 그와 비슷한 처지였던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아, 내가 당한 거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거였구나. 퇴사한 지 6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주변에서도 다들 그렇게 말했지만 두둔한 건 나였다. 그도 나름의 사정이 있을 거라고, 그의 힘듦을 먼저 생각한 것도 나였다. 그런 나의 삶이 점점 흔들리는 건 모르고 있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피해자들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보면 화가 났다. 죽지 말고 살아서 가해자를 죽이면 되잖아. 차라리 살인자가 되는 게 낫잖아.
그런데 많이 지친 어느 날 밤에 잠들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내일 아침에 눈이 안 떠졌으면 좋겠다. 엄청 아파서 응급차에 실려 갔으면 좋겠다. 출근하는 길, 저 차에 치이면 출근 안 해도 되겠지. 그럼 그 얼굴도 안 봐도 되고, 혼나지 않고, 마음이 다치지도 않겠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내가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가해자와 대판 싸우고 사직서를 던지면 되는 건데. 죽는 것보다 백수가 되는 게 낫잖아. 그때는 이렇게 저렇게 버텼다. 어쩌면 퇴사가 지는 일이라 생각해서 오기로 견뎠는지도 모르겠다. 부서가 바뀌었고, 나를 괴롭힌 그 사람이 회사를 관두면서 잊고 지냈다.
그리고는 뜬금없이 드라마를 보고 엉엉 울다가 갑자기 과거의 나를 발견했다. 그 뒤로도 내내 울었다. 과거의 내가 너무 불쌍하고 외로워 보였다. 어느 누구에게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았고, 손을 내밀지도 않았고, 그저 조용히 부서지고 있었다. 심지어 나조차 괜찮다고 스스로를 속이고 있었다는 게 제일 억울하고 서글펐다.
우울함을 걷어내기 위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은 없었고 그저 내 감정을 정리하고 싶었다. 글을 쓰면서도 많이 울었다. 한 문장 쓰고 울고, 한 문장 쓰고 코 풀고.
쓰고 나니 후련했다. 여전히 그때의 나를 떠올리면 손 쓸 틈 없이 눈물이 차오르지만 그래도 그 페이지를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글을 여러 사람에게 보이기로 결정한 것은 충동적이었지만 그렇게 발행하고 나니 더 개운했다. 많은 사람들이 내 아픔과 상처를 보고, 외롭고 불쌍하고 한심한 과거를 읽었다.
조회수가 올라갈 때마다 과거의 나는 점점 더 과거로 가는 것 같았다. 내 글이 한 명 한 명에게 읽힐 때마다 나의 상처를 다른 사람에게로 넘기는 것 같았다. 그래서 점점 나는 과거의 나와 멀어지는 것 같았다. 누군가는 댓글을 달아줬다. 나의 안녕과 무사를 바라는 토닥임이고, 외로웠던 과거에게 보내는 위로였다. 글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그 순간이었던 것 같다. 드디어 내게도 표현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긴 거였다.
돈이나 자기만의 방이 어쨌건 간에 쓰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잡았다. 뭐가 뭔지 모르겠어도 일단 잡아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다. 생각해 보면 할까 와 말까의 기로에서 주로 ‘말까’를 택하며 살아왔다. 그래서 무언가 떠올랐을 때 잡지 못하고 흘려보낸 적이 많을 것이다. 나에게 관심을 보이던 꽤 괜찮은 남자애나 이직할 수 있는 타이밍이나 사과해야 하거나 사과받아야 했던 순간 같은 것들.
시간은 1초만 지나가도 1초 전과 지금이 다르게 된다. 이 글을 처음 쓰던 나는 이미 과거의 내가 되었고, 그 순간으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그런 생각을 하면 내가 놓친 시간들이 그렇게 아깝고 아쉬울 수가 없다. 손을 아무리 뻗어도 지나간 시간을 잡을 수 없다. 지금도 뭔가를 놓치고 있을 것 같아 불안하고 두렵다. 그래서 계속 쓰려고 한다. 쓰고자 하는 마음은 잡았으니 이 마음은 현재 내 것이 되었다. 계속해서 내가 무엇을 잡으며 미래의 나에게 내 것을 만들어주게 될까. 글을 쓰는 일이 미래에도 내 것이 되었으면 하고 바라보는 밤이다.
2023. 6. 7.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