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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율무 Jun 08. 2023

18번 박달재

  대부분의 음악은 상황을 떠오르게 하는데, 어떤 음악은 특정 인물을 떠오르게 한다. 나에게는 그렇게 특정 인물을 떠오르게 하는 음악이 하나 있다.     


"울고 넘는 박달재"     


  무려 1948년에 나온 노래로, 90년대 생인 내가 꼽기로는 뜬금없는 노래다. 박달재라는 고개에서 이별하는 연인들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노래다. 나는 이 노래를 알게 되고 한참 동안이나 박달재가 고개가 아닌 사람의 이름인 줄 알았다. 나에게 뜬금없는 노래를 기억에 남게 하고, 박달재를 사람 이름으로 알도록 만든 사람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 기술과목을 가르치셨던 선생님이다. 그를 우리는 ‘재하기 쌤’이라고 불렀다.

  재하기 쌤의 성이 뭐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안 난다. 그가 우리에게 성을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수업 시간 칠판에 커다랗게 '재하기 쌤' 이라는 글씨를 썼다. ‘샘’도 아니고 ‘쌤’이었다. 본인을 그렇게 부르라는 거였다. 그래서 본명인 O재학 보다 ‘재하기 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재하기 쌤은 풍채가 좋은, 열네 살의 눈으로 봤을 때는 할아버지에 가까운 인상이었다. 말투가 다정하고 목소리가 온화해서 따뜻함을 풍기는 할아버지. 나는 그때 재하기 쌤의 나이가 일흔 쯤 되었다고 생각했다. 

지금 와서 교사의 정년을 생각하니 그보다 어린 나이였을 것이고, 어쩌면 지금 나의 부모와 비슷한 연배였을지도 모른다.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고 그저 보이는 것으로 사람을 단정 짓던 시기가 있었다. 재하기 쌤은 발표를 시키거나 누군가를 지명할 때 이렇게 말했다.     


 “18번 박달재, 일어나서 이 부분 읽어보세요.”

 “18번 박달재, 이거 정답이 뭘까?”     


  선생님의 노래방 18번이 '울고 넘는 박달재'라서 그렇게 부르신다는 거였고, 내가 바로 그 18번이었다. 

나는 기술 시간이 되면 종종 '박달재' 혹은 '(내 성을 붙인) 정달재'로 불렸다. 열네 살의 아이들 중 누구도 그 노래를 몰랐지만, 누군가가 '박달재'라는 웃기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었다. 

본인의 이름을 장난스러운 별명으로 만들었던 만큼 그는 유머와 재치가 넘치는 어른이었다. 그와 함께한 모든 시간이 기억에 남고 즐거웠던 것은 아니지만, 다정한 말투와 단정한 옷차림은 지금도 그려볼 수 있다. 

그때는 아마도 고리타분하고 할아버지 같은 옷이라고 생각했겠지만, 매일 그렇게 단정히 차려입고 출근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지금은 안다.


  재하기 쌤의 말투나 옷은 기억해 낼 수 있지만 수업 내용은 기억이 안 난다. 

단 하나 기억나는 게 있다면 '키스의 기술'이랄까. 그는 네이버 카페를 운영하시며 온갖 정보를 올리셨는데 그중 가장 인기 있는 게시물은 '키스하는 방법' 영상이었다. 어떤 여자와 남자가 다양한 종류의 키스를 한다. 하는 척이 아니라 실제로 한다. 처연하고 웅장하기도 한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여자와 남자가 키스하는 영상에 교육적인 내레이션이 붙는다. 음악과 내레이션만 들으면 EBS교육방송에 나올법한데, 그 내레이션의 내용이 상당히 노골적이다.     


'프렌치 키스, 입술을 벌린 채 혀만 자유롭게 장난치듯 움직이는 키스. 이 키스와 함께 상대의 얼굴을 감싸거나 몸을 강하게 끌어안거나 하면 더욱 강한 자극을 받게 됩니다.' 이런 식이다.

‘이 키스는 아주 강한 자극을 주며 본격적인 섹스를 암시합니다.’ 같은 문장도 있었다.      


  많은 글들 중에서 해당 영상이 담긴 게시물만 조회수가 폭발했다. 나도 그 수많은 조회수들의 일정 지분을 차지했을 것이고. 영상매체가 지금처럼 활발하지 않던 시절, 한창 성에 눈을 뜨던 아이들에게 그 영상은 야동이나 다름없었다. 키스나 섹스가 뭔지도 모르고 그저 야하다는 느낌만 있었다. 왠지 보면 안 될 것을 보는 듯해서 몰래 보았지만, 그래서 더 짜릿했는지도 모른다. 만약 지금 시대에 학교 선생님이 그러한 영상을 공유한다면, 누군가는 좋지 않게 볼지도 모르겠지만 그때의 선생님은 많이 보라고 권장하셨다. 

키스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며 배워야만 잘할 수 있다고 하셨다. 배워두려고 그렇게 열심히도 돌려본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첫 키스를 하던 때에 종소리가 들리기보다는 그 영상이 잠깐 떠올랐다. 보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은 역시 다르구나, 생각했었다. 

그 영상의 이미지와 함께 선생님의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 키스가 사랑을 표현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내내 기억했다. 언젠가는 내 사랑을 도저히 표현할 단어를 찾지 못해서 키스를 하고 마는 장면을 그렸다.


  나는 지금보다 훨씬 소심하고 낯도 많이 가리는 아이여서, 1년간 선생님의 '18번 박달재'였지만 선생님과 살가운 사이로 지내지는 못했다. 학년이 올라가고 졸업을 하면서도 그에게 연락하거나 찾아뵙는 일도 없었다. 이따금씩 혼자서 그를 떠올릴 때가 있었다. ‘울고 넘는 박달재’를 우연히 듣게 되거나 키스하는 방법에 대한 영상을 보거나 키가 큰 할아버지를 볼 때. 

그로부터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으니 선생님은 더 이상 학교에 계시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그는 '재하기 쌤'으로 불리고 있을 것 같다. 한참 어린아이들에게 권위를 내세우기보다 이름을 부르게 만들었던 것처럼, 여전히 권위를 내세우지 않으며 유머를 아는 어른으로 살고 계실 것 같다. 허리가 굽지도 않고 풍채가 좋은 진짜 할아버지로. 그런 어른의 18번으로 보낸 시절이 어쩌면 나의 다정한 부분을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2023. 6. 9.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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